고양 오리온은 지난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첫 관문을 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추일승(53) 오리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해부터 줄곧 그랬다.
오리온은 2012~13시즌 6강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 2승3패로 졌다. 2013~14시즌과 2014~15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각각 서울 SK와 창원 LG에 1승3패, 2승3패로 시리즈를 내줬다. 추 감독은 세 차례의 실패 원인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추 감독은 결국 ‘가드 싸움’에서 밀렸다는 답을 내렸다. 그래서 외국인 포인트가드 선발을 생각했다. 실제 오리온은 단기전에서 상대 가드들한테 맥없이 당했다. 6강 당시 KGC인삼공사 김태술과 이정현, SK 김선형과 주희정에게 무너졌다. 지난 시즌에는 패한 1,3,5차전 모두 LG 가드 김시래가 경기를 지배했다.
추 감독은 2015~16시즌 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애런 헤인즈(199㎝)를 뽑고, 2라운드는 조 잭슨(180㎝)을 지명했다. 잭슨은 고교 시절 미국에서 ‘난다긴다’ 하는 실력자들만 참가하는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게임’을 뛰었고, 농구 명문 멤피스대에서 활약했다. 추 감독은 잭슨을 대학 때부터 지켜봤고, 10개 팀 사령탑 중 유일하게 포인트가드를 선택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있었다. 해외리그가 처음인 잭슨은 화려한 기술을 갖췄지만 이기적인 플레이 성향이 짙었다. 팀에 녹아 들기 보다 혼자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잦자 동료들은 잭슨이 공을 잡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급기야 주위에서 ‘외국인 교체 카드를 꺼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추 감독은 “외국인 선수 시장이 좋지 않다”며 잭슨을 고집했다.
믿고 기다려주자 잭슨은 조금씩 한국리그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갔다. 동료들의 공격 기회를 살려주면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고 긴박한 상황에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모습도 보였다. 팀 주축 헤인즈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는 에이스가 됐다.
잭슨의 폭발력은 전주 KCC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더욱 빛이 냈다. 1차전 때 20점을 올렸지만 어시스트는 2개로 부족했고, 팀은 졌다. 그러나 2차전에서 빠른 공격 템포로 상대 수비를 무너트리며 18점 9어시스트를 올렸다. 3쿼터에 터진 연속 3점슛은 일찌감치 승부를 가르는 외곽포였다. 특히 4쿼터에 자신보다 키가 13㎝나 큰 김태홍 앞에서 ‘인 유어 페이스 덩크슛’(상대 수비를 앞에 두고 꽂는 덩크)으로 코트 분위기를 후끈 달궜다. 3차전에도 후반에만 17점을 몰아치는 집중력으로 2연승을 이끌었다. KCC에는 국내 최고 수비력을 자랑하는 신명호가 전담 마크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현재 시리즈 상황을 볼 때 오리온이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면 챔프전 MVP(최우수선수) 유력 후보는 잭슨이다. 외국인 선수 마지막 챔프전 MVP는 2002~03시즌 원주 TG삼보(현 동부)의 데이비드 잭슨이다. 추 감독의 ‘안목’이 13년 만에 외국인 MVP 탄생을 눈 앞에 뒀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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