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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SAT 문제 유출 재판, 美 증거만 기다리다 2년여 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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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SAT 문제 유출 재판, 美 증거만 기다리다 2년여 공전

입력
2016.03.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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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S 기출문제 비공개 방침에

검찰, 저작권 위반 입증 못해

재판장 세 번 바뀌며 공전 거듭

사법기관의 인권침해 논란 낳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유출 사건’으로 2013년 11월 재판에 넘겨진 유학생, 어학원 강사 등 21명이 무려 2년 5개월째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하고 피고인 신세로 얽매여 있다. 취업준비생 1명은 기다리다 지쳐 처벌을 내려달라고 별도 재판을 요구해 최근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검찰이 저작권 위반 사항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기소하고, 법원도 SAT 주관사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의 자료 제공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서 사법기관의 인권침해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오윤경 판사는 지난 21일 미국 유학생 이모씨 등의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9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효율적 재판 진행을 위해 검사와 피고인 측의 쟁점과 채택될 증거 범위 등을 정리하는 준비절차인데 이를 아홉 번이나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같은 난항은 ETS측이 2014년 9월 한국 법원의 시험문제 자료제공 요청(사실조회 촉탁)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SAT 문제를 유출해 복사본ㆍ파일로 팔거나 강의 자료로 써온 이들을 기소하면서 문제들을 뭉뚱그려 저작권법 위반 공소사실을 적시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어떤 문제의 어느 내용을 베꼈는지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아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들의 범죄혐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실제 시험문제를 확보해 유출문제와 비교해야 했지만 ETS 측은 비밀 유지를 이유로 시험문제를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자인 ETS 측이 고소하지도 않은 사건을 검찰이 내사로 압수수색까지 벌인 뒤 이모씨 등 22명을 무더기 기소했지만 정작 피해자 측의 협조도 못 받았던 것이다. 미국은 저작권법 위반을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법원과 법무부 국정감사에선 이 사건을 놓고 법제사법위원들의 질타가 빗발치기도 했다. 법사위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은 “사법권 과잉행사가 아니냐”며 “젊은 학생들이 취업과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형주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재판부에 적절하게 전달하겠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공소제기할 때부터 검사가 증거를 확보해서 제출해야 했는데 미국 측에 확인도 안 하고 재판 단계에서 2년 넘게 피고인들을 신문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도 재판은 계속 공회전했다. 참다 못한 취업준비생 김모(36)씨는 “잘못을 인정하니 빨리 선고를 해달라”고 호소해 지난해 12월 따로 재판을 받고 벌금 400만원을 선고 받았고, 최근 항소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 사건에서 벌써 네 번째 재판장이 된 오 판사는 “ETS 측에서 메일로 ‘자료를 보냈다’고 회신은 했는데 법원에 보내온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확인 결과, ETS는 최근 관련 자료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검찰청에 전달했다. 해당 자료가 유죄를 입증할 시험문제라면 2년여가 지나서야 비로소 재판 진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 자료를 검토하거나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검사는 법정에서 “ETS 측에서 보낸 방대한 자료가 왔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아직 보진 못했다”고만 밝혔다. 재판장은 다음 재판 역시 준비기일로 정하고, 무려 두 달 뒤인 5월 초로 날짜를 잡았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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