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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 뺨치는 공천 막장극

입력
2016.03.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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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한 이후부터 한글 자막이 깔린 정치 스릴러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가끔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열혈 팬이라고 고백한 것으로 유명한 이 드라마는 미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인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워싱턴 정가의 치열한 암투를 그리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되기 위해 권모술수, 여론조작, 심지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지만 다시 찾아보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아마도 틀에 박힌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정치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최근 본 에피소드에서는 대통령이 된 언더우드가 치매 증상으로 자진사퇴를 원했다가 마음을 바꾼 연방대법원장을 상대로 병세를 누설하겠다며 사임을 압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재선 도전이 여의치 않은 언더우드가 후임 대법원장으로 점 찍었던 법무차관의 대선 출마로 배신 당하는 반전에 이르면 도대체 정치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인지 되묻게 된다.

이처럼 정치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영역이지만 이면에는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정반대의 속성이 숨어 있다. 그래도 민주사회의 정치가 조폭 세계의 정치와 같은 반열에 있을 수는 없다. 그걸 가르는 기준이 최소한의 금도는 지키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됐다”며 조롱하는 드라마 속 언더우드처럼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정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23일 유승민 의원이 탈당하면서 사실상 마무리된 새누리당 공천은 오랜만에 ‘하우스 오브 카드’에 버금가는 추악한 정치의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에게 40명의 물갈이를 요구했다는 전언 수준의 폭로는 막장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뒤이어 터진 친박계 핵심 윤상현 의원의 막말 녹취록 파문이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도 예단이었다. 이번 공천의 하이라이트인 유승민 고사 작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천 초기 유 의원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보복을 당할 것이란 예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편을 죽이기 위한 권모술수가 이렇게 집요하고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 ‘3ㆍ15 공천 학살’ 이후 유 의원이 당을 제 발로 걸어나갈 수 없다며 ‘내 목을 먼저 치라’고 하자, 반대파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처신하게 놔둘 수 없다며 ‘고사 작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마지막 날까지 공천관리위원회는 아무 결론도 안 내리는 부작위로 일관했고, 유 의원은 공직선거법상 당적변경 시한을 1시간 남긴 밤 11시 탈당 기자회견을 여는 소동을 벌였다. 서로를 믿지 못하니 ‘공천심사 마지막 날 유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하더라도 당이 업무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오후 6시 이후 탈당계 접수를 받지 않을 것’ 등 온갖 꼼수 시나리오가 하루 종일 난무했다.

돌이켜 보면 18ㆍ19대 총선 공천 때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18대 때는 친이계 중진 누구를 탈락시키는 대신 친박계 누구를 날린다는 식의 막후 조율은 있었다. 19대 때는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의 수족은 날리면서도 이 의원은 살렸다. 아무리 정치의 영역이라고는 해도 개인의 양심과 도덕을 짓밟거나 사회에서 합의된 정의 관념을 훼손하는 수준이 되어선 곤란하다. 하지만 20대 총선 공천은 이런 레드라인을 넘었다. 서울 강남 3구에서도 새누리당 진박 예비후보에 등을 돌린 게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영화 ‘내부자들’의 명대사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는가?” 내게는 공천 막장극의 주역들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정의? 정치판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나 한가?” 이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잘 들어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4월 13일 ‘종이 돌멩이’를 들기 위해 반드시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김영화 정치부 기자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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