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자주 가던 음반 매장엘 들렀다. 구색이 많이 바뀌었다. CD가 아예 구석으로 몰렸다. 중앙 매대는 고가의 수입 LP로 빼곡하다. 시대별 장르별로 없는 게 없다. 주머니 사정상 입맛만 다시며 중고 LP가 꽂혀있는 매장 구석으로 간다. 8,90년대에 출시됐던 라이선스 음반들이 헐값에 꽂혀있다. 어릴 땐 집에 전축이 없어 살 수 없었던 것들. 제목만 보고도 머릿속에서 줄줄이 멜로디가 재생될 그것들을 서너 장 뽑아 들곤 카운터로 간다. 공연히 설렌다. 귀가해선 한 장 한 장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귀에 인이 박여 있을 정도로 익숙한 음악들이지만, 예전에 잘 들리지 않던 소리도 귀에 붙는다. 요즘 음악들과 비교해 봐도 촌스럽지 않다. 어떤 원형과 첨단들이 그때 다 정밀해져 있었다. 30년 동안의 세계 록음악, 또는 팝음악의 변화 추이를 돌이켜 본다. 테크놀로지가 변형시킨 것과 그 어떤 첨단 과학도 변형시킬 수 없는 인간 정서의 본원적 토대 사이의 역학관계를 따져본다. 당대의 것일수록 더 세련된 것이라는 오해는 누가 퍼뜨린 걸까. 시간착오로 후퇴하는 게 아니라, 시간 경계를 넘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심정적 향수만은 아닐 거다. 어떤 재생성의 기운이 느껴진다. 알고 있던 모든 것, 닳고 닳았다고 여긴 모든 걸 새로 일깨워 다시 느끼고 싶어진다. 이게 단지 음악만의 얘기라 들리시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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