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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말할 수 있다…“끔찍했던 파리테러의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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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말할 수 있다…“끔찍했던 파리테러의 비밀들”

입력
2016.03.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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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3일 파리 테러 당시 최대 사망자를 낸 바타클랑 극장 바닥에 묻은 혈흔과 함께 시신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다. 미러지 .
지난해 11월13일 파리 테러 당시 최대 사망자를 낸 바타클랑 극장 바닥에 묻은 혈흔과 함께 시신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다. 미러지 .

이달 초 늦은 저녁 프랑스 파리에 있는 아나우드(41)의 집은 평소와 달리 어두웠다. 올해 두 살이 된 어린 딸이 잠에서 깰 까봐 그는 부엌 탁자에 앉아 조그만 전등을 켰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흰 종이 한쪽에 검정색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게 시체 수십 구를 쌓아두었던 시신더미입니다.” 동그라미 옆으로 두 줄로 된 평행선과 화살표 여러 개를 그렸다. 바타클랑 극장 공연 무대와 맞은편에 있던 계단, 비상구의 위치라고 했다. 그리고 계단 아래쪽 구석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렸다. “테러범이 자폭하자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의 머리가 계단 아래로 굴러 내려간 게 기억난다”고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지난해 11월13일 파리 중심가에 있는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저녁 9시48분부터 10시15분까지 단 27분간 발생한 총기난사와 자살폭탄 테러로 관객 90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아나우드는 바타클랑 극장에서 테러범이 최후까지 볼모로 잡았던 인질이다. 아나우드는 그날 저녁 7시쯤 아내인 마리에와 함께 헤비메탈 그룹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공연을 보러 그곳에 갔고, 다음날 14일 새벽 0시23분쯤 극장 바닥에 있던 시신들 사이에서 피범벅 상태로 경찰에 발견됐다. 정신을 잃은 그의 등에는 폭탄 파편들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꽂혀 있었다.

파리 테러가 발생한지 올 3월13일로 정확히 4개월이 흘렀다. 심각한 부상과 정신적 외상증후군에 시달렸던 테러 생존자들이 간신히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사건을 증언하고 나섰다.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증언을 통해 테러의 현장을 역사에 낱낱이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나우드를 중심으로 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바타클랑 극장 내 테러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모하메드 아가드
모하메드 아가드

공연 폭죽으로 들린 총성, 시작된 지옥

지난해 11월13일 밤 9시48분부터 10시까지 단 10분간 프랑스 경찰서에는 약 5,000통의 긴급 신고전화가 한꺼번에 걸려왔다. 푸에드 모하메드 아가드(23)와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29), 사미 아미무(28) 등 이슬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조직원 세 명이 바타클랑 극장에서 학살을 벌이던 때다.

극장에서 첫 총성이 울렸을 때 테러를 떠올리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맞춰 무대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어요.”루이지 자르딘(28)은 극장에서 처음 총성을 들었을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와우, 멋진데”라는 감탄사였다고 했다. 공연 퍼포먼스인 폭죽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건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음악이 멈추며 정적이 찾아오자 절망의 낯빛이 본색을 드러냈다. 자르딘의 눈에 바로 앞에 있던 남자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단내가 나면서도 시큼한 피 냄새가 코로 확 덮쳐 들었다. 자르딘은 몸을 숙인 채 머리 위를 가죽지갑으로 가리고 관객석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자르딘은 “거기에는 이미 총에 맞은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며 “그녀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 내 이름을 물어봤다”고 씁쓸히 말했다. 자르딘은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다. 근처에 있던 테러범 아미무가 밤 10시7분쯤 경찰의 저격총에 맞자 자폭한 것이다. 자르딘은 “피가 흐르는 머리는 둔기로 맞은 듯 아팠고 귀에서는 계속 쇳소리가 났다”며 “옆에 있던 한 소녀가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기억난다”고 말했다.

공연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무대 오른쪽에서 공연을 보고 있던 알렉스 조프레(39)는 첫 총성이 울렸을 때 자동소총을 쥔 테러범들의 모습을 바로 알아봤다. 관객들이 공포로 비명을 지르던 사이 조프레는 무대 옆에 놓여 있던 상자(가로 1m, 세로 1m, 높이40㎝) 안으로 급하게 기어들었다. 그때부터 경찰이 구조하러 온 자정까지 그는 상자 안에 숨어 꼼짝하지 않았다. 상자 밖에서는 테러범들이 장난하듯 관객들을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일어서 나가는 사람은 그대로 살려 보내주지.” 한 테러범이 웃으며 말했고, 엎드려 있던 관객 중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뒤따라 총소리가 들렸다고 조프레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난해 11월14일 테러범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바타클랑 극장 주변을 프랑스 경찰이 포위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난해 11월14일 테러범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바타클랑 극장 주변을 프랑스 경찰이 포위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극장 서 벌어졌던 두 시간 동안의 인질극

아나우드는 아내인 마리에와 2층 발코니에 있는 관객석에서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수십 발의 총성이 들리자 맞은편 발코니에 서 있던 관객 두 명이 총에 맞아 난간 밖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아나우드는 2층 계단으로 가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복도를 뛰었다. 그때 등뒤에서 들린 목소리를 아나우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면 살 수도 있을 거야.” 테러범인 모스테파가 뒤에서 그들을 노려보며 총을 겨누고 있었다.

모스테파는 그들을 인질들이 모여있던 1층 무대 앞으로 끌고 갔다. 무대 앞은 메케한 탄약 연기로 가득 했고, 바닥에서 발을 뗄 때마다 신발에 진득한 피가 묻어났다. 무대에는 관객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시신 수십 구가 높은 탑처럼 쌓여 있었다. 사방 벽을 타고 휴대폰 진동음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가드가 인질들한테서 빼앗은 휴대폰들에는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착신전화로 불빛을 반짝이는 휴대폰 화면들에는 ‘엄마(mom)’라는 단어가 보였다고 아나우드는 말했다.

테러범들은 아나우드와 마리에를 복도의 문과 창문 앞에 각각 서 있게 했다. 프랑스 경찰이 극장 안으로 진압작전에 나설 것을 대비해 관객들을 통로에 세워 방패막이 삼은 것이었다. 아나우드는 “테러범 아가드는 ‘이제 자폭할 때가 왔다’고 연신 중얼거렸고, 모스테파는 총구 끝으로 자꾸만 내 갈비뼈 사이를 찌르며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며 “그들은 마치 마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질들이 테러범들의 시선을 피한 채 숨죽이던 그때 너무나 느닷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아나우드는 회상했다. 인질 중 한 명이 갑자기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기괴한 웃음소리였다. 아나우드는 “웃음을 터트린 남성은 지금의 상황을 터무니 없는 장난처럼 여기고 있는 듯 했다”며 “너무나 공포에 질려 아예 이성이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가드가 남성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 옆을 총으로 겨눴지만 남성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총성이 귓가를 때렸다. “한번만 더 웃으면 그땐 죽는 거야.” 아가드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웃고 있던 남성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며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가드가 인질들 앞에 서더니 “이 중에 결혼한 부부가 있냐”고 물었다. 아나우드와 마리에는 입을 꾹 닫고 침묵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가드는 극장 밖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과 협상을 벌일 계획이었다. 요구사항을 경찰에 전달하기 위해 인질 한 명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부부 중 한쪽이 극장 안에 남아있다면 도망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인질 중 아무도 나서지 않자 테러범들은 인질 한 명을 끌어내 현관 문 앞에 서게 했다. 그는 인질로 하여금 “경찰 병력을 철수해라. 그렇지 않으면 인질 모두를 폭탄으로 날려 버리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

자폭 전 긴급 진압작전 개시

협상은 진척이 없었다. 모스테파와 아가드의 초조한 눈빛이 인질 모두를 불안하게 했다. 한 인질이 용기를 내“압수해 간 휴대폰을 이용하면 경찰과의 협상이 더 잘 진행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아나우드는 “아가드가 마리에의 휴대폰을 골랐다”며 “나중에 아내의 휴대폰을 확인하니 그들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고 말했다. 휴대폰에는 밤 11시27분부터 자정을 넘긴 0시18분까지 51분 동안 다섯 통의 통화가 녹음됐다.

“당신들(프랑스 정부)이 우리의 나라(시리아)에서 군대를 철수하길 요구한다. 이를 보증하는 서명된 문서를 갖고 와라. 지금이 밤 11시32분이다. 앞으로 5분마다 인질을 한 명씩 죽인 다음 창 밖으로 던질 것이다.”“우리는 두려운 게 없다. 협상이 잘 되면 인질들을 풀어주겠다.” 테러범들은 협상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에 이성을 잃어갔다. “건물 밖에서 경찰은 철수하라. 우리는 자폭조끼를 갖고 있고 경찰이 더 접근하면 터트리겠다. 우리는 인질이 있다.”

마지막 통화가 녹음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0시18분쯤 발코니 쪽에 있던 문이 부숴지며 프랑스 조직범죄전담팀(BRI) 대원들이 섬광탄을 뿌리며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인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진압작전을 전격 감행한 것이었다. 아가드와 모스테파의 얼굴이 경악으로 바뀌던 것을 아나우드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아가드가 인질 중에 아나우드를 잡고 1층 복도 끝으로 끌고 갔다. 거기까지가 아나우드가 극장 안에서 기억하는 전부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경찰이 급습하자 모스테파는 그 자리에서 자폭조끼를 터트려 숨졌고, 아가드도 경찰과 교전을 벌이다 자폭했다. 아나우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피투성인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파리 테러 발생 넉 달이 지났지만…

해가 바뀌었지만 파리 테러는 생존자들을 여전히 자유롭게 놓아 주지 않고 있다. 자르딘은 파리 테러가 발생하고 한 달 뒤에 찾아온 크리스마스에 돌연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마스 트리 뒤에 테러범이 숨어 있을 것 같았어요…” 조르제는 현재 창문 근처에 다가서지를 못한다. “창문 밖 길거리에서 테러범이 총구를 겨누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공황장애가 와요.”조르딘과 자르제는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아나우드는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살기와 같은 분노가 마음 속에서 치솟는다고 했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무슬림들을 보면 그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은 지난달 16일 파리의 올림피아 콘서트 홀에서 공연을 열었다. 파리 테러 때 바타클랑 극장에서 중단됐던 공연을 재개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날 공연에는 자르딘과 조르제도 참석했다. 마리에는 아나우드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나우드는 그날 집 거실에 앉아 TV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공연을 끝까지, 그리고 조용히 지켜봤다. 그의 품에는 두 살 된 딸이 잠을 자고 있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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