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고사장에 120여 택시운전사들 몰려
팬들이 사비 털어 공연 스티커 등 제작도
23일 오후 2시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 인근 주차장에 택시 120여 대가 순식간에 몰려 들었다. 유명한 기사 식당이 있어서가 아니다. 차에서 내린 택시운전기사들이 하나 둘씩 몰려 간 곳은 ‘슈퍼콘서트-토요일을 즐겨라’(토즐) 공연 기념 고사장. 택시운전기사들 중 세 명은 1992년 ‘너는 왜’란 곡으로 인기를 누린 혼성 듀오 철이와 미애의 무대 의상과 가수 나미의 백댄서팀이었던 붐붐의 옷을 입고 있었다. 세 명이 고사장에 등장하자 주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이를 지켜 보던 신철(52)이 ‘너는 왜’ 춤으로 화답하자 현장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됐다. 신철은 1980년대 나미와 붐붐 멤버로 시작해 철이와 미애에서 랩을 담당했고 DJ DOC 등을 키운 음반 제작자가 됐다.
이날 남한산성에 모인 택시운전사들은 모두 ‘토즐’ 공연을 기획한 신철(52)의 팬들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공연을 기획한다고 하자 서울 경기 권에서 택시를 모는 신철의 팬들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 고사장을 찾은 것이다.
신철은 택시나 버스를 모는 40~50대 운전사들 사이 ‘아이돌’로 통한다. 신철의 팬으로 유독 택시운전사들이 많은 이유는 신철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 동안 SBS 러브FM ‘DJ처리와 함께 아자아자’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서다. 서울에서 모범택시를 모는 황인선(51)씨는 “서울이 워낙 교통체증이 심해 하루 12시간씩 운전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신철이 1980~90년대 유행했던 댄스 음악을 많이 틀어줘 그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격의 없이 청취자와 소통해 택시 운전사나 버스 운전사들 가운데 신철의 팬이 많은 것”이라며 웃었다. 경기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왕규영(52)씨는 “신철 라디오 방송 첫 해에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 신철과 인연을 맺었다”며 고사장을 찾게 된 이유를 들려줬다.
이 택시운전사들은 신철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사비를 털어 택시나 버스에 붙일 수 있는 공연 홍보 스티커 3,000장을 직접 제작했다. 택시 트렁크 위에 꽂는 공연 홍보 깃발도 만들어 나눠 갖는다. 신철은 “팬들이 고사 준비도 도와줬다”며 “워낙 팬 가운데 택시를 모는 분들이 많아 서울과 경기에서 가장 큰 주차장을 찾다가 남한산성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신철이 기획한 ‘토즐’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5월 잠실벌에 모인다. 그룹 DJ DOC을 비롯해 지누션과 노이즈, 영턱스클럽, R.ef, 룰라, 쿨 등이 5월7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함께 공연하게 된다. 신철은 “대중문화중흥기인 1990년대를 지낸 30~40대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매해 공연을 꾸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즐’ 공연은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해 국내 7개 도시와 미국 뉴욕 등에서 총 8회의 공연이 진행돼 약 2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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