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3일 당 잔류를 선언한 기자 회견의 대부분을 4ㆍ13 총선보다는 선거 이후를 겨냥한 발언들로 채웠다.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향후 대선 과정에서 옛 주류 진영과 치열한 노선 투쟁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권을 지향하려면 국민의 정체성에 당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더민주는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20일 중앙위에서 일부 중앙위원들이 자신과 비대위원들이 결정한 비례대표 후보 일부의 과거 행적과 발언들을 정체성을 이유로 문제 삼은 데 대해 못마땅해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이번 사퇴 고민 과정에서 총선 이후 밑그림까지 그렸을 가능성도 나온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는 당에 있어봐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쉽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에 사퇴까지 고민했다가 남기로 한 이상, 옛 주류 진영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세력 구축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날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때까지 경제민주화를 위해 비례대표로 남아 계셔야 한다”며 힘을 실어줘, 김 대표로선 활동 반경을 넓힐 자유통행권(프리패스)까지 얻은 상태다.
문제는 당내 세력이 없는 김 대표가 선거 이후 지금 정도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여부다. 당장 총선 직후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출마를 해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표가 아닌 자리에서 기존 당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총선에서 예상 밖의 좋은 성적표를 얻는다면 전당대회를 거치지 않고 대표로 추대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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