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관련 강력사건 잇따르지만
하루 8시간 게임도 ‘비중독’ 분류
게임중독 실태 호도ㆍ왜곡 심각
비극적 사건의 주요 원인이나 동기로 게임이 작용한 사실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 최근 알려진 신원영(7)군 학대 사망 사건의 주범인 계모 김모씨는 원영이를 장기간 굶주림 속에 방치했다. 그런데 자신은 최근 8개월 간 무려 4,000만원을 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 쏟아 부을 정도로 게임에 몰두했던 것으로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제(23일) 경기 성남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도 온라인 게임이 문제였다. 범인 장모(21)씨는 직업조차 없이 하루에 7시간 이상 게임에 매달려 왔다고 한다. 사건 당일에도 새벽 6시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 장씨에게 보다 못한 아버지가 “게임 좀 그만하라”고 꾸짖자 격분해 흉기를 들었다.
게임 관련 사건은 이 뿐만이 아니다. 2010년 12월엔 충남 천안에서 한 여성(27)이 게임 도중 두 살 박이 아들이 방바닥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같은 해 3월엔 역할게임(RPG)에 빠진 남편(41)과 아내(25)가 3개월 된 친딸의 젖병 속 분유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굶겨 죽였다.
사회병리적 사건의 전면에, 또는 배경에 게임 문제가 끝없이 등장하면서 게임중독에 대한 우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초ㆍ중ㆍ고교 내 인터넷게임, 스마트폰 등에 대한 중독 선별 검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낸 것도 그런 상황과 우려를 반영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국내 토종 게임업체를 잡아먹고 있는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뜩이나 인터넷게임 ‘셧다운’제도 같은 규제로 대표적 미래형 콘텐츠 산업이 고사 직전에 몰렸다는 읍소도 나왔다. 이미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적절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왜 복지부가 새삼 이중규제에 나서려고 하느냐는 항의도 거셌다. 게임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무엇보다도 몇몇 극단적 사건을 빌미로 부작용을 과장해 게임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는 피해의식일지 모른다.
게임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는 업계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만도 수백 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관련 산업 진흥을 위해 투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 반대세력’들이 부작용과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오히려 게임중독, 정부 용어로 하자면 ‘게임 과몰입’의 심각성을 실제보다 가볍게 호도하고 있는 건 게임업계의 편에 선 정부부처다.
현재 국내에서 게임중독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공식 창구는 보건당국이 아니라, 게임산업 진흥에 앞장 선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다. 진흥원은 지난 2월 발표한 ‘2015 게임 과몰입 종합실태조사’에서 ‘게임 과몰입군’ 비중은 이전 3년과 같은 전체의 0.7%에 머물렀고, 게임을 건전하게 이용하는 ‘게임 선용군’ 비율은 증가했다고 밝혔다. 청소년 12만2,841명과 성인 3,300명 등을 표본으로 한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대부분 언론은 게임중독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비상식적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게임 과몰입군’ ‘과몰입 위험군’ ‘일반 사용자군’ ‘게임 선용군’ 등으로 나뉜 게임이용자 분류 기준부터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수없이 많은 설문조항을 넣어 종합하다 보니,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 가운데 과몰입자로 분류되는 비중이 5.6%밖에 되지 않는 엉뚱한 결론이 나왔다. 이런 식이다 보니, 전체 응답자 12만3,182명 중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전체의 7%인 8,661명에 달했지만, 게임 과몰입자는 그 10분의 1인 0.7%로 축소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게임중독이 우려된다고 아예 게임산업을 접자는 얘기가 아니다. 부작용 우려가 큰 만큼 적절한 사회적 대응을 모색하자는 거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지금이라도 게임중독 실태부터라도 새로 파악해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