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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당한 몸 면목 없다” 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병마와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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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당한 몸 면목 없다” 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병마와 ‘사투’

입력
2016.03.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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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나눔의 집 제공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나눔의 집 제공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하상숙(89ㆍ사진) 할머니가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3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따르면 생존 위안부 피해자 44명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에 살고 있는 하 할머니가 지난달 15일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중국인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밀려 2층 계단에서 넘어지는 변을 당한 것이다. 하 할머니는 현재 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927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나 예산에서 자란 하 할머니가 중국에 머물게 된 것은 일본군의 만행 때문이었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44년 5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에 붙잡힌 할머니는 그 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 한커우(漢口)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8개월 여간 고통을 받았다.

일본 패망 뒤 풀려났지만,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포기했다. “일본군에게 수치를 당한 몸으로 고향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 할머니는 이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중국인과 결혼했고 1962년 방직공장에 취직해 25년을 일했다.

위안부 생활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하 할머니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데려온 아이 셋을 친자식처럼 길렀다고 한다. 199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막내딸과 함께 지내왔다.

하 할머니는 한ㆍ중 수교(修交) 전까지 사실상 국적도 없었다. 할머니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1947년 임시 국적인‘조선적(朝鮮籍)’을 받았는데,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ㆍ중간 국교가 단절되는 바람에 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내 나라는 한국”이라며 중국 귀화를 거부했던 할머니는 1992년 한ㆍ중 수교가 이뤄지고 난 이후인 1994년 3월에서야 국적을 되찾았다.

하 할머니 측에 병원비 1,000만원을 건넨 나눔의 집 측은 시민들의 후원을 요청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오래오래 생존해 계셔야 가능한 일”이라며 “할머님이 서둘러 완쾌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지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는 나눔의 집(031-768-0064)으로 하면 된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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