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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분노분노 열매는 이제 그만

입력
2016.03.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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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종종 후유증을 앓는다. 사건의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불안을 느끼며 더러는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닌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외상후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런데 심리적 외상은 전염성이 있다. 피해자를 마주한 주변 사람들도 피해자 본인처럼 각종 심리적 증상을 앓는다. 이것을 간접외상이라고 한다.

간접외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피해자와의 관계에 벽을 쌓는 것이다. 그의 감정을 수용하기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예 등을 돌려 버린다. 둘째는 거기서 더 나아가 피해자가 겪은 사건이 피해자의 탓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피해자 주변의 관찰자는 “그러게 왜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녔느냐” 또는 “그 산사태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같은 식으로 말함으로써 자기 마음 속의 짐을 덜 수 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간접외상은 피해자에게 한번 더 절망을 안긴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호소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간접외상의 셋째는 흔히 생존자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신이 그 끔찍한 사건에서 벗어나있었다는 이유로 느끼는 강한 죄책감이다. 죄책감에 휩싸인 사람은 자신을 학대한다. 맛있는 음식이나 즐거운 사교관계 등이 모두 역겹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물론 피해당사자에게도) 똑같이 강요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가 상처를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를 비난하기도 한다.

넷째는 피해자와의 동일시다. 피해자의 강렬한 감정에 동화되어 마치 자기 자신이 그 사건을 겪은 것처럼 반응한다. 피해감정에 동일시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분노를 전이시킨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해서 원한을 재생산함으로써 피해자가 부정적 사고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증상들은 모두 하나이며 대개 복합적으로 또는 교차적으로 나타난다. 외상후증후군이 불안, 무기력감, 적개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하나인 것과 같다. 간접외상의 셋째, 넷째도 그 앞의 두 가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내 문제의식은 외상 후유증을 치유하지 않는 경우 주변으로 퍼지면서 심리질환이 집단화된다는 것이다. 그게 사회가 불행한 이유다. 사회도 사람처럼 병든다. 하지만 간접외상의 일부 증상들은 종종 옳은 일로 평가되기에 적절한 치유가 어렵다.

최근 우리 사회엔 자발적인 시민활동가들이 부쩍 늘었다. 활동가들은 저마다 생각과 정치적 입장이 크게 다르지만 모두 고도의 정서적 공감능력을 가졌다. 이들의 ‘활동’이란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 이웃, 차별 받는 이웃, 거대한 참사에 휩쓸려간 이웃들과 손을 잡고 함께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이 겪는 고통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나 공기관이 고통을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웃의 고통을 두고 보지 않으려는 이들의 정신은 참으로 우리 시대의 공통감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도처에 깔린 억울한 목소리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모두 느슨한 개인인 탓에 그 충격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마음을 앓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가끔은 나 자신도 그럴 것이다. 경험 많은 심리치료사조차도 간접외상을 겪는다. 사람이니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른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활동가는 다 같이 ‘멘붕’에 빠져 어디로든 분노를 토해내는 것을 ‘연대’라고 착각한다. 분노가 비합리적 신념으로 치닫지는 않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은 연대가 아니라 심리적 충격에 따른 간접외상이다. 고통을 줄이기는커녕 더욱 퍼지게 만들 뿐이다. 사회가 병들었다면, 그 병의 전염을 차단시키는 일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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