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2일 누란지위의 당을 구하기 위해 침묵을 깼다. 대표에서 물러난 후 2개월째 경남 양산 자택에 칩거하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로 급히 상경,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찾아가 사퇴 만류에 나섰다.
문 전 대표는 이날 경남 창원시청에서 야당 후보 연대와 관련한 기자회견 직후 서울로 향해 구기동 김 대표의 자택에서 45분간 회동했다. 회동을 마친 후 그는 기자들에게 “김 대표가 당을 변화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많은 성과를 거뒀는데, 마치 사심에 의해 (비례대표를) 결정한 것처럼 매도 당해 명예를 가장 중시하는 분으로서 마음에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한 것 같다”며 “(김 대표에게)이제 ‘화룡점정’을 잘 해주셔야 한다, 끝까지 당을 책임지고 당 간판으로서 있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는 거듭 김 대표의 ‘비례대표 2번’ 배정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김 대표께 대접과 예우를 해야 마땅하다. 경제민주화란 화두로 총선을 치르는데 간판 역할을 해야 하고, 총선 이후 다음 대선 때까지 그런 역할을 계속해 주셔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앞서 창원시청 기자회견에서도 문 전 대표는 “제가 대표를 하고 있었더라도 김 대표를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모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 온 문 전 대표가 2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 사태를 그만큼 위중하게 받아들였다는 방증이다. 당초 문 전 대표는 비례대표 순번을 둘러싼 이번 당내 공천 파동에 침묵을 이어가 이른바 ‘친문(친문재인)’세력과 김 대표 사이의 알력다툼이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은 바 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사퇴로 당이 총선 코앞에서 좌초할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영입하고 또 전권을 안겼던 당사자인 만큼, 문 전 대표의 ‘오랜 침묵’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뒷말도 나온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당 안팎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문 전 대표가 나서지 않으면서 쌓인 불신과 서운함이 결국 파국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최소한 전날 중앙위원회에서라도 문 대표가 나서서 당 분위기를 추슬러야 했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당의 혼란이 다시 드러난 상황이라, 문 전 대표의 서울 상경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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