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하청 노조 “관련자 처벌” 촉구
지난해 대의원 선거 앞두고
출마자 성향ㆍ득표 현황 등 기재
면담 통해 투표 단속하려 한 정황도
현대重 “출처불명… 임의 작성된 듯”
현대중공업이 자사와 하청업체 노동조합원을 사찰해 성향을 파악ㆍ분류하고 노조 선거에도 줄곧 개입해왔다는 전직 노무관리자의 폭로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사측 문건이 공개됐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22일 울산시청 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의 불법 사찰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지난해 노조 대의원 선거에 대한 개입을 시사하는 문건들을 공개했다.
문건은 두 가지다. 먼저 지난해 1월로 표시된 ‘27대 대의원 선거 득표 현황’이라는 제목의 문건(사진)을 보면 부서별 대의원 출마자들의 성향 분석과 당락ㆍ득표 현황 등이 기재돼 있다. 특히 출마자마다 영문자 GㆍYㆍR로 분류한 것은 각각 녹색ㆍ황색ㆍ적색의 이니셜로 친(親)회사ㆍ중립ㆍ반(反)회사를 뜻한다고 노조 측은 설명했다. ‘면담계획서’라는 제목의 다른 문건에는 대상자, 면담 일시ㆍ장소가 적혔고 면담자가 사측에 얼마나 우호적인지가 AㆍBAㆍBBㆍBCㆍC 등 5단계로 평가됐다. 높은 등급 위주로 “직책자로서 책임과 소임을 다할 것임”이나 “정말 합리적으로 호응도가 높음”, “회사가 너무 신뢰를 주지 못했지만 파업만은 안 된다” 같은 내용도 기록됐다. 선거를 앞두고 사측이 면담을 통해 강성 출마자를 가려내고 표를 단속하려 한 정황으로 보인다. 두 노조는 “사측이 매년 노조 선거에 개입해 입맛에 맞는 대의원과 집행부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명백한 증거가 밝혀진 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 노조는 “사측이 회사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며 철저히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탄압해 왔고 지금도 노조의 자주적 행사인 쟁의찬반투표, 전환배치반대집회, 노조 간부 선전물 배포 등을 감시하는 불법 사찰을 일삼고 있다”며 경영진 퇴진 및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앞서 18일 사내하청지회는 2011년까지 운영지원과장(노무 담당)으로 일하다 퇴사한 이재림(60)씨가 재직 당시 작성한 수첩과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서 이씨는 사측이 ▦노조원 성향을 R(강성)ㆍY(중립)ㆍW(회사 편) 등 세 가지로 나눈 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사와 하청업체 노조원들까지 광범하게 관리하는 한편 ▦강성 조합원들의 경우 미행하고 사찰했으며 ▦노조원들의 강성 조직 후보 추천을 막거나 투표할 때 용지를 접지 못하게 해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노조 대의원 선거에 조직적으로 간여했다고 폭로했다.
회사가 노조 활동에 개입하거나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2년 이하 징역형까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벌금형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부당노동행위는 반사회적 범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소극적 수사 탓에 증거 부족으로 가볍게 처벌되기 십상”이라며 “사찰 방식이 미행 정도면 경범죄 말곤 처벌 조항이 딱히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문건으로, 누군가 임의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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