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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축구 국대 감독 통역을 한다면? 분위기 파악도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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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축구 국대 감독 통역을 한다면? 분위기 파악도 어려울 듯”

입력
2016.03.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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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ㆍ현직 국가대표 사령탑의 ‘분신’들이 모였다. 히딩크 통역이었던 전한진(왼쪽부터) 대한축구협회 국제팀장과 본프레레와 아드보카트, 베어벡 통역 박일기 국가대표지원팀장 그리고 현 슈틸리케 감독의 통역 이윤규 국가대표지원팀 사원.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전ㆍ현직 국가대표 사령탑의 ‘분신’들이 모였다. 히딩크 통역이었던 전한진(왼쪽부터) 대한축구협회 국제팀장과 본프레레와 아드보카트, 베어벡 통역 박일기 국가대표지원팀장 그리고 현 슈틸리케 감독의 통역 이윤규 국가대표지원팀 사원.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세군다 요.(segunda yo)”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은 통역을 이렇게 부른다. 스페인어로 두 번째 나, ‘분신’이라는 뜻이다. 통역은 단순히 말만 전달하는 감독의 ‘입’이 아니다. 24시간 감독과 동행하며 그 의중까지 정확히 파악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국가대표 전ㆍ현직 사령탑 통역 3명을 동반 인터뷰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인 거스 히딩크(70ㆍ네덜란드) 감독의 통역 전한진(46) 대한축구협회 국제팀장, 조 본프레레(70ㆍ네덜란드)와 딕 아드보카트(69ㆍ네덜란드)ㆍ핌 베어벡(60ㆍ네덜란드) 감독의 통역 박일기(39) 국가대표지원팀장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의 ‘세군다 요’인 이윤규(31) 국가대표지원팀 사원을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 팀장과 이 씨는 해외 주재원이었던 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혔다. 박 팀장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서 배웠다. 영국과 스페인, 브라질에서 거주한 이 씨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도 능통하다.

협회는 히딩크의 통역으로 처음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려다가 풍부한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내부 직원인 전 팀장을 낙점했다. 박 팀장은 외국인 지도자 강사 통역을 하다가 본프레레 선임과 함께 감독 통역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전 팀장과 박 팀장 모두 처음에 통역을 고사했다. 박 팀장은 “임원 한 분이 술을 사 주며 ‘국가대표 감독 통역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 뿐인 직업이다’고 하셨다.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수락했다”고 털어놨다. 전 팀장도 “나도 그 말에 설득 당했다”며 웃었다. 이 씨는 정반대다. 그는 2010년 정규직으로 현대자동차에 입사, 경영전략팀을 거쳐 글로벌 인사지원팀에 있다가 ‘박차고’ 나와 계약직인 통역을 자원했다. 주변에서 ‘미친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통역은 감독의 비서 업무도 겸해서 늘 비상 대기다. 감독 일정이 없는 날에는 밀린 부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자기 시간이 거의 없는 고된 직업이지만 이 씨는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힘줘 말했다. 전 팀장과 박 팀장도 “과거로 돌아가도 감독 통역은 다시 할 것이다. 힘들지만 보람도 크다”고 했다. 하지만 둘은 “지금 하라면 못 하겠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대표팀이 2001년 9월 훈련하는 모습. 히딩크 감독 바로 옆에 서있는 이가 전한진 통역.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표팀이 2001년 9월 훈련하는 모습. 히딩크 감독 바로 옆에 서있는 이가 전한진 통역.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아드보카트 감독 기자회견에 동행한 통역 박일기 국가대표지원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아드보카트 감독 기자회견에 동행한 통역 박일기 국가대표지원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9월 한국과 레바논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원정을 앞두고 슈틸리케(왼쪽) 감독과 신태용(오른쪽) 코치 사이에 서 있는 통역 이윤규 국가대표지원팀 사원. 대한축구협회 제공
2015년 9월 한국과 레바논의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원정을 앞두고 슈틸리케(왼쪽) 감독과 신태용(오른쪽) 코치 사이에 서 있는 통역 이윤규 국가대표지원팀 사원.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들은 “통역은 감독의 감정, 축구 철학까지 완전히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 팀장은 “히딩크가 부임 초기 선수단 미팅 때 제대로 통역을 못 한다며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줬다. 특별히 실수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항의했다. 미팅이 끝나고 히딩크가 따로 불러 ‘너를 활용해 나태해진 분위기를 잡으려고 한 건데 그것도 눈치를 못 채느냐’고 질책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슈틸리케 감독은 기자회견 때 원고를 준비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코멘트를 정확히 전달하려면 왜 그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동의했다. 박 팀장은 “감독이 말하면 선수들은 감독이 아니라 통역 입을 본다. 감독과 말투, 몸짓까지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협회나 언론 등과 갈등을 빚을 때 다독이고 중재하는 것도 통역 몫이다. 역대 외국인 사령탑 중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본프레레를 ‘모신’ 박 팀장은 아찔한 경험이 많다. 한 번은 본프레레가 박 팀장을 ‘협회 스파이’라고 의심했다. 박 팀장은 “간, 쓸개 다 내놓고 감독만을 위해 살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서글펐다”고 씁쓸해했다. 본프레레가 갑자기 짐을 싸서 숙소를 나가는 바람에 박 팀장이 공항까지 따라가 겨우 데려온 적도 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전현직 국가대표 감독의 통역 3명.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전현직 국가대표 감독의 통역 3명.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감독과 동고동락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가까워진다. 전 팀장은 “히딩크는 한 번 마음을 연 사람은 끝까지 보호했다”고 고마워했다. 박 팀장은 아드보카트를 못 잊는다. 토요일에 지방에서 열린 K리그를 관전한 아드보카트를 수행한 뒤 밤늦게 함께 서울 호텔로 왔다. 다음 날 오전 출국이라 박 팀장은 파주 국가대표 숙소에 갔다가 새벽에 다시 감독을 데리러 호텔로 와야 했다. 아드보카트는 “내 돈으로 방을 잡아 줄 테니 편하게 자고 가라”며 특급 호텔 방을 예약하려 했지만 박 팀장이 거절했다. 그는 “지방과 파주, 서울을 하루에 오가는 살인 일정에도 그 말을 들으니 피로가 싹 사라지더라”고 미소 지었다. 전 팀장과 이 씨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랫사람들을 잘 배려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 씨는 “감독님은 ‘너는 내 아들이면서 배우자, 좋은 친구 같은 존재다’고 늘 말씀하신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이세돌(33)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큰 이슈가 됐던 인공지능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인공지능이 먼 미래에 국가대표 감독 통역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3명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상황 판단, 분위기 파악, 감독 심리까지 알아채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모를까….”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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