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고양이 혁명

입력
2016.03.22 16:04
0 0

서울을 떠나 수도권 소도시로 이사 간 선배가 있다. 대학 때엔 극렬 운동권이었고, 학교 제적 이후엔 이런저런 사회학 이론 게시판에 ‘핫’한 글들을 올리던, 이른바 ‘좌파 논객’이었다. 필명만 서너 개 알려졌을 뿐, 본명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서울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그의 집에 들렀을 땐 고양이 여덟 마리가 같이 살고 있었다. 밤이면 아내와 함께 동네 길고양이들 식량 공급에 열성이었다. 서울을 떠날 때에도 고양이들 편의를 크게 고려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 그에게서 2년여 만에 전화가 왔다. 대뜸 고양이 얘기만 길게 떠들어댔다. 그 동안 한 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늘 씩씩하고 당돌해 보이기만 했던 그들 부부가 긴 슬픔에 빠졌었다는 얘기엔 듣는 이편도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지금은 아기 고양이를 위한 이유식 개발에 열중이라고 했다. 세상이 변화하는 기미나 패러다임 전환에 예민한 촉을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단순한 동정이나 박애주의만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그의 얘길 듣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길고양이들 안위가 걱정돼 눈물을 글썽거리던 시인 L이 떠올랐다. 평소 말이 없다가도 고양이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고양이처럼 변해 방언 쏟듯 고양이의 세계에 대해 읊조려 대는 이. 선배나 L을 겹쳐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제 다른 인간이 생성되어야 한다고. 지구에서 인간의 몫을 조금은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거라고.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