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 시국 사건을 변호하며 느낀 것은, 법정 안의 변호인으로서만은 내 소임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과 법정이 정의를 외면하는 세상에서 변호인의 쓸모가 과연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럴수록 잘못된 재판을 법정 밖으로 끌어내 많은 동시대인과 후대에 알려야겠다 싶었다. 그게 바로 기록자, 증언자로서의 역할이다.”
한승헌(82) 변호사는 22일 자신의 새 책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창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50여 년 시국사건과 양심수를 변호한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한국현대사의 맥락을 따라 가며 17건의 정치재판을 소개한 책이다. 책에서 거론한 재판은 동백림 사건, 대통령긴급조치 1호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이다. 이 중에는 한승헌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때로 피고인으로 직ㆍ간접으로 관여한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한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이 무어냐는 질문에 “변호사에게는 모든 사건이 중요하다”면서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정남이 상고심 끝나고 1975년 4월 9일 사형집행을 당했다. 변호인이었던 나는 그 시간에 반공법으로 구속이 돼서 서울구치소에 있어 형 집행을 알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문제는 고생을 해서 그렇지 결국 다 올바르게 돌아온다. 인혁당 사건도 35년만에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인혁당 사건 사형수 8명 중에 여정남, 그 사람만 못 돌아온다.”
한 변호사는 필화사건으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일을 돌이키며 “‘재판야화’라는 책을 내면서 ‘끝나지 않은 심판’이라는 제호를 붙였더니 기관원이 불러 추궁을 하더라”며 “이 나라에는 재판은 끝났지만 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는 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사법이 지난날의 상처를 극복하고 올바른 역사 발전에 제 몫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모두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대통령이 사형수가 되기도 하고,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기도 하는 나라다. 이런 반전을 생각한다면, 좋은 의미의 반전이 또 한번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요.”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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