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규제 없애자 일대변화
인형탈 쓴 친구와 선생님이 반겨
후드티 등 입고 자유로움 만끽
교사들 “수업 분위기도 되레 개선”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너와 나 꿈을 나눌 이 순간~”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등교를 시작한 21일 오전 8시 10분 인천 계양구 서운동 서운고등학교 후문 너머로 별안간 최신 유행가요가 울려 퍼졌다. 음악과 함께 곰돌이 푸우 인형 탈을 쓴 학생이 율동을 하며 나타나 교문을 지나는 학생을 와락 껴안았다. 무표정하게 등교하던 학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푸우와 함께 교문 앞에 나선 서운고 학생회 간부들은 등교생에게 황사 마스크를 쥐어주며 “좋은 아침!”을 외쳤다. 인형 탈을 써 땀으로 범벅이 된 심규선(17)양은 “처음엔 어색해서 멀찍이 돌아갔던 학생들이 이젠 먼저 다가와 안아 주고 하이파이브까지 한다”며 “등굣길에 웃음이 끊이지 않아 아침 일찍 탈을 쓰고 준비하는 보람이 있다”고 활짝 웃었다.
서운고가 교문 지도를 해 오던 학생회 소속 선도부를 이번 학기부터 없애면서 나타난 등교 풍경의 변화는 극적이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서운고 등굣길은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선도부 학생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머리와 복장이 제각각인 학생들의 사진에서 규정 위반 사항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고강도 면접훈련을 통과한 소수정예 선도부 학생들이 교문 양쪽에 도열해 ‘매의 눈’으로 적발했다. 이 학교 학생 박우빈(18)군은 “지난 학기까진 괜한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선도부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통과했었다”고 살얼음판이던 등굣길을 돌아봤다.
학생이 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하니 ‘완장’을 찬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 갈등이 나타났다. 서운고 학생회장 정해찬(18)군은 “교문에서 벌점을 받은 뒤 욕설을 하며 지나간 학생과 선도부원끼리 크게 시비가 붙었던 적도 있었다”며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식의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선도부 학생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학생에게 권한을 남용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던 차에 마침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일선 학교에 선도부 폐지 권고를 내린 것을 계기로 서운고는 개교 이래 줄곧 운영해 오던 학생 선도부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교문지도가 사라지면서 당연히 복장과 규율이 흐트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실제로 교복 상의에 코트를 덧입거나 교복 셔츠에 후드티를 껴 입은 학생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교문을 들어섰다. 예전 같으면 선도부에 무더기로 적발될 일이다. 아침 바람이 쌀쌀해 교복 와이셔츠 위에 긴 소매 티셔츠를 입고 왔다는 남윤성(16)군은 “작년엔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옷을 껴 입고 올 생각을 아예 못 했다”며 “봄, 가을에 눈치 안 보고 따뜻하게 옷을 입을 수 있어 제일 좋다”고 웃었다.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보는 보수적 시각에서 보면 분명 학생들의 복장 규율은 해이해진 셈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분위기가 바뀌며 인식도 함께 달라진 점이다. 학생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김용진 학생부장 교사는 “어두운 낯빛으로 등교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눈에 띌 정도로 밝아졌고, 상당수 교사들이 수업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다”며 “자연스레 교사들 사이에서 복장이나 머리 등을 과도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참여했던 조영선 영등포여고 교사는 “교복이나 두발을 과도하게 규제한다고 해서 면학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에 보기 좋고 관리하기에 편할 뿐”이라며 “공항 검색대처럼 학생을 적발하는 교문지도가 교육적으로 좋지 않아 서울에서도 ‘등교맞이’로 전환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선도부를 폐지하면서 교육적으로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크다는 해석이다.
인천=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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