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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자포자기… 위기의 老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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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자포자기… 위기의 老포세대

입력
2016.03.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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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ㆍ경찰 도움 거부하고 고립

극단적 선택도 20년 사이 두 배로

“노인 자기방임도 학대의 한 영역

생명보장 측면에서 사회가 돌봐야”

지난 10일 강원 속초시 한 오피스텔에서 70대 노부부 시신이 경찰에 발견됐다. 직계가족 없이 33㎡(1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살아가던 남편 A(75)씨와 아내 B(71)씨는 각각 백내장과 중풍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해온 상태였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없이 외롭게 늙어가던 부부는 희망 없는 삶을 포기하기로 하고 지난해 9월 6일 ‘시신을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발견된 건 그로부터 6개월 뒤였다.

C(64)씨 역시 외로운 노년 생활이 삶의 포기로 이어진 경우다. 그는 여관방에서 술로 세월을 지새우다가 밀린 월세를 받으려던 여관주인에게 발견됐다.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이 이혼한 뒤 30년간 홀로 살아온 C씨는 아픈 몸 때문에 경제력을 상실한 뒤 형제들에게까지 버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고립이 종국에는 자신의 삶까지 버리는 자기학대로 변질된 것이다.

‘老포(노포)세대’가 위기다. 1960, 70년대 한국 사회 발전의 주역이었던 노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30세대의 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태는 ‘N포세대’ 위기로 불리며 국가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설 정도로 관심사다. 반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노인들의 자포자기는 사회안전망 보호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실정이다.

끼니와 질병 치료도 포기... ‘셀프학대’ 확산

끼니와 질병 치료를 거르는 등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노인들의 ‘자기방임’ 사례도 많다. 정신장애 3급인 D(62)씨는 어머니가 사망한 뒤 컵라면과 음료수 등으로만 끼니를 연명했다.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까지 감퇴했지만 치료조차 하지 않았고, 집안 쓰레기도 집안에 그대로 방치한 채 불결한 생활을 이어갔다. 우국희 서울기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1일 “자기방임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로, 단순히 노년화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면서도 “자기방임이 학대의 한 영역으로 분류되는 만큼 현상을 세분화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5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방임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27개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ㆍ접수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 노인학대 유형 중 자기방임은 2010년 196건에서 2014년 463건으로 늘어났다.

자기방임의 극단적 결말은 자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고의적 자해(자살)에 의한 사망률 역시 1995년 인구 10만명당 23.6명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55.5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老포’ 막을 사회안전망 가이드라인 시급

스스로를 포기하는 노포세대 대부분이 외부의 도움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다. E(78ㆍ여)씨 역시 믿었던 장남에게 버림 받자 자포자기로 자기 자신까지 버린 경우다. E씨는 50대 아들이 전세금과 공과금 지원을 끊자 살던 방에 그대로 자신을 가뒀다. 외출과 일상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노인이었지만 세상과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것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 F씨는 노인을 모실 여력이 없다며 경찰과 노인보호기관의 연락을 기피했고, E씨 역시 심각한 대인기피증세를 보이며 도움을 주려던 기관 관계자들의 개입을 거부했다.

실제로 홀로 지내는 노인들 중 사회생활 자체를 끊은 노인도 많다. 복지부가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독거노인 100만 명을 조사한 결과 경로당, 복지관, 종교시설 등 정기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37%에 달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노포세대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자의에 따라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는 고립은 노포세대의 자기 결정권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효 사상과 결합해 ‘방치된 노인은 마땅히 사회가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다수다. 다만 노포세대를 보호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문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현민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부장은 “대부분의 자기방임 증세를 보이는 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고수하길 원하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도 거부한다. 노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더 상위 가치인 생명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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