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화제였던 지난 10여일, 마주한 경제계 인사들에게 물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에 알파고(인공지능)를 앉히면 어떨까요.”
대번에 ‘실없는 소리’란 면박이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은 더뎠다. 맞장구 칠 일까진 아니어도 순간 무언가 ‘불안한 상상’이 다들 머릿속을 스치는 듯 했다.
당장의 현실성을 떠나 한번 생각해 보자. 7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한 자리에 인공지능을 앉힌다. 알파고에서 보았듯, 인공지능 금통위원은 수억, 수조 개의 경제 통계를 종합해 기준금리가 국내 시중금리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들을 즉각 분석한다. 시장이 뭐라 떠들어대든, 경제가 이러니저러니 갑론을박이 난무해도 인공지능은 오로지 설정된 경제논리로만 판단한다. 아직 공식 통계가 집계되지 않은, 그래서 지금은 한은의 전문가 집단도 상당부분 ‘감’에 의존하는 최신의 경제 흐름까지 인공지능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심지어 금통위 회의 도중에도 인공지능은 그 시각 경제의 변화를 정리해 쏟아낼 것이다. 마치 알파고가 이세돌의 한 수 한 수에 반응했듯이.
대개 기준금리 동결의 단골 근거로 애용되는 ‘경제의 불확실성’도 인공지능에겐 없거나 훨씬 적을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한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antㆍ향후 경제지표에 기반한 판단)’라며 뭉개 버리는 향후 금리 방향의 시그널 역시 인공지능에겐 확률로 계산된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 지금처럼 ‘불가지론’ 뒤에 숨을 여지는 그만큼 적어지는 셈이다.
나머지 인간 금통위원들이 그 정보분석을 두고 ‘인간의 판단’을 내린다. 마치 알파고의 착수를 마주한 이세돌이 그랬듯이. 어쩌면 한 수 한 수에 “놀랍다” “이해할 수 없다”를 되뇌었던 프로9단 해설자들처럼 우왕좌왕할 수도 있다.
그러다 결국엔 인간 금통위원 무용론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비교도 안 되는 정보와 분석을 내 놓는데, 여기에 인간이 던지는 훈수나 평가 정도를 위해 비싼 연봉을 계속 줘야겠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금통위원을 각계 전문가로 추천 받아 일일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건 경제 전반에 금리가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7명이나 두고 다수결로 결론을 모으는 건 금리가 오르내림에 따라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가 달라서이기도 하다. 아예 법 조항부터 금통위의 독립성을 못박고 있는 것 역시 금리가 경제 외 논리에 휘둘려선 곤란해서다. 모두 실수나 치우침을 막기 위한 일종의 예방장치들인데,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이미 인공지능은 금통위원이 될 자질을 두루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마침 다음달이면 4명의 금통위원이 한꺼번에 바뀐다. 벌써부터 실력보다 ‘낙점’에 기대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이들이 소신보다 배경에 얽매여 낼 목소리, 절반 이상의 금통위원이 한 동안 새 자리에 적응하느라 겪을 미숙함까지. 모두 피하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이지만 합리적인 인공지능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들이기도 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당장 수년 안에 인공지능을 금통위원으로 맞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으로 벌써 수많은 금융 인력이 미래의 일자리를 걱정하듯, 인공지능은 금융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매달 기준금리 결정을 위해 매달리는 1,000명 넘는 한은 엘리트들의 존재가 어느 순간 우스워지지 않으려면 이들이 기계와는 다른 인간만의 차별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달 새로 맞을 금통위원들에게 인공지능의 학습능력과 분석력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입력된 조건(자신을 밀어준 이의 뜻)에만 충실하는 기계처럼 행동하지 않길 바란다. 차가운 경제논리 한편엔 따뜻한 인간의 공존에도 마음을 쓰길 바란다. 비록 승부에선 졌지만 승리 이상의 감동을 안긴 이세돌이 그랬던 것처럼.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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