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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김종인의 소탐(小貪)

입력
2016.03.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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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공천에 좋아지던 형세 흔들려

사심으로 비쳐 반대 세력 역습 초래

자신 이익 버리는 대인 풍모 아쉬워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구기동 자택을 나서며 셀프 공천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구기동 자택을 나서며 셀프 공천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그 동안 어려운 국면을 잘 타개해 왔다. 안철수 탈당과 국민의당 창당으로 당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던 더민주였다. 파산 직전의 회사나 다름 없던 이 당에 임시 관리인으로 영입되더니 과단성 있는 리더십으로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지역구 공천에서 친노ㆍ운동권, 막말ㆍ갑질 의원, 당의 역동성에 짐이 되는 다선 중진 의원 등을 털어내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무기력한 당에 아연 활기를 불어넣고, 되돌아선 지지자들을 결집시킨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링을 적정 타이밍에 중단시킴과 동시에 국민의당에 야권 통합을 전격 제안해 국면전환을 꾀한 것도 주효했다. 안철수 대표가 받지 못할 제안임을 뻔히 알면서도 국민의당 내부 동요를 유발해 당세를 크게 약화시켰다. 야권 분열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노림수였다. 이 한 수로 수도권 일대에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일정부분 여야 1 대 1 구도로 바뀌는 효과를 거뒀다.

여기에 새누리당 친박 주류의 유승민 등 비박계 쳐내기 공천갈등의 반사이익까지 누리면서 이제 새누리당의 과반 압승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 대표 자신은 관훈 토론에서 현재의 107석을 지키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호언할 정도가 됐다. 더민주 안팎에서 김종인 영입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 수가 4ㆍ13총선 바둑판에 놓이는 순간 그 좋던 형세가 단박에 일그러졌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관전자들에게서는 “이건 아니지!”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 대국을 계기로 우리 일상어 가운데 바둑에서 유래된 용어들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는데, 소탐대실(小貪大失)도 바둑에서 흔히 쓰는 격언이다.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이야말로 바둑에서 소탐대실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만하다.

소동 끝에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위를 14번으로 재조정했지만 이전의 좋은 형세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일부 비례대표들의 부적절한 전력까지 드러나 파장은 일파만파다. 김종인 체제에서 졸지에 척결 대상이 된 친노ㆍ운동권은 총선 참패를 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휘두르는 칼을 속절없이 받아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김 대표에게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게 대전제였다. 헌데 김 대표가 사실상 첫 순위나 다름 없는 비례대표 2번이 되고, 그와 가깝다는 인사들이 안정권 순번을 꿰찼으니 친노ㆍ운동권 세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 대표가 총선 이후 당을 이끌고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의원직이 필요하고, 당 체질개선과 이미지 변화를 위해 운동권 출신 위주가 아닌 각계 전문가들을 비례대표 안정권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19대 국회 때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비례대표로 진출했지만 의정활동 등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당에 부담만 안겼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김 대표는 친노 운동권 세력의 반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둑을 두었어야 했다.

비례대표 안정권에 운동권 대신 각계 전문가들을 배치하려면 적어도 자신만은 당선 안정권 경계선이나 그 밖에 위치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당내 반발 최소화를 위해 필요했다. 다시 바둑 격언으로 말하면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는 지혜다. 그런 대인의 풍모로 당을 이끈다면 당내 다른 세력들이 지금처럼 들고 일어나기 어렵다. 대통령 눈 밖에 벗어난 정치인들은 다 쳐내는 새누리당 공천과 더욱 비교되면서 본인과 더민주의 주가는 한층 더 뛰었을 게 틀림 없다.

김 대표는 자신을 욕심 많은 노인네로 몰아간다며 노발대발이다. 하지만 친노ㆍ운동권 세력이 자신의 깊은 속뜻을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런 정도로 이해심 깊은 세력이라면 지탄과 척결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셀프 공천 소동 속에 새누리당의 공천 분란은 가려지고,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5선은 기네스북 등재감”이라고 쾌재를 부르며 희미해진 존재감을 되살리고 있다. 김 대표가 그간 애써 쌓아 올렸던 점수를 한 번에 다 까먹게 생겼다. 정말 소탐대실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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