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구로병원은 2014년 4월 암병원을 문 열었다. 이 병원이 암병원을 개원하면서 내건 중심 가치는 ‘환자 중심’. 병상수와 환자수 확대를 통한 병원 덩치 키우기 보다는 보다 전문적인 치료 서비스 제공에 매달리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의지는 일일 항암치료실 운영으로 대표되는 원스톱 진료와 진료과의 벽을 허문 다학제진료 활성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로 암병원 다학제진료는 상명하달식 지시가 아닌, 밑에서부터 뜻이 모아지면서 시작됐다. 전공 분야가 각기 다른 전문의들이 환자를 치료의 중심에 놓기 위해 과 이기주의를 스스로 내려놨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 50대 초반 대장암 환자 김미나(가명ㆍ여) 씨는 암세포가 간에 대거 전이돼 담당의로부터 “치료 불가”를 통보 받았다. 김씨는 얼마 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 암병원을 찾았다. 이곳에선 김씨에 대해 다학제진료를 했다.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 전공이 각기 다른 전문의 7~8명이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댔다. 다학제 회의 결과는 ‘항암치료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로 제거하자’는 것. 간 전이 상태가 심해 수술이 쉽진 않지만, 젊은 나이를 고려할 때 암의 완전한 제거를 노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간 전문의는 간의 재생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수술을 두 차례 나눠 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김씨는 석달 동안의 항암치료 뒤 대장암과 간에 전이된 암세포를 차례로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희망을 건져올리게 됐다.
최근 다학제진료가 암환자 치료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 암과 사투에서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환자 생명을 구하거나 말기암 환자의 생존율을 끌어 올리는 등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다학제진료는 전공이 각기 다른 전문의들이 환자 개개인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협진 시스템. 대장암 전이 환자 김씨를 사지에서 건져 올린 것도 다학제진료의 힘이었다. 김씨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민병욱 고려대 구로 암병원 대장암센터장. 민 센터장은 “다학제진료가 없던 예전 같으면 ‘치료해봐야 소용 없을 것’이라는 예단에 종양내과에서 외과 쪽으로 환자의뢰조차 안 했을 것”이라며 “치료법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다 보면 해법이 보이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했다.
고려대 구로 암병원은 다학제진료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 평가 받는다. 암종별 진료팀 이름에 ‘다학제팀’이라고 못 박고 있을 정도다. 유방암 폐암 대장암 두경부암 췌담도암 등 암종별로 매주 1~2회 열리는 다학제진료 회의에는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관련 의료진과 환자 및 보호자가 한 자리에 모인다. 김씨처럼 대장암의 간 전 또는 폐 전이가 있는 경우 항암치료의 횟수와 수술 시기, 수술 방법 등이 집중적인 논의 대상이다.
진료 과를 앞세우는 의국(醫局) 중심의 전통이 뿌리깊은 국내 의료 시스템에서 다학제진료는 말처럼 쉽지않다. 고려대 구로 암병원을 이끌고 있는 민병욱 대장암센터장(대장항문외과)은 “다학제진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과 이기주의 내려놓기와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팀워크도 관건이다. 민 센터장은 “대장암센터의 경우 점심시간인 낮 12~오후 2시에 다학제진료를 보는데 점심 안 먹고 다들 참석한다. 영상검사 결과까지 다 확인하고 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비뇨기센터 박홍석 교수는 다학제진료의 이점에 대해 “전립선암은 진행이 느린 초기암부터 진행이 빠른 전이암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며 “이에 따라 환자 나이, 기저질환 여부 등을 고려해 적극적 추적관찰, 근치적 전립선절제술, 세기조절 방사선치료(IMRT), 항남성호르몬 및 항암 치료까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줄 수 있다”고 했다.
복강경과 다빈치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 치료와 표적치료제 활용은 환자맞춤 치료 구현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수술 시 가급적 절개 범위를 최소화 하고 약제도 환자의 유전적 특질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 사용하므로 치료율을 높이고 부작용 발생은 최소화 할 수 있다.
로봇 수술에 대해 민 센터장은 “예전 개복수술 시 솔직히 잘 안 뵈는 곳은 감에 의존했다. 직장암 환자의 경우 항문을 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로봇 이용으로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짐에 따라 항문 보존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함암치료에서는 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치료제가 속속 추가됨에 따라 맞춤치료가 점점 세분화 하고 있다. 민 센터장은 “유방암에서 허투(her2)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허셉틴이라는 표적치료제가 잘 듣는다. 이런 임상시험 결과가 대장암에서도 성립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대장암에서도 her2 유전자 검사를 시작했다”고 예를 들었다.
환자 중심 진료와 맞춤치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박 교수는 비뇨기계 암에 대해 “?국소진행성 전립선암 및 전이성암에 대해 기존의 항남성호르몬치료, 세기조절 방사선치료, 독시탁셀(doxitaxel) 항암치료 등에서 어떤 순서와 조합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민 센터장은 “대장암의 5% 정도는 유전성으로 환자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 자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도 아주 중요하다”며 “종양유전자역학센터를 추가로 개설해 예방에 힘쓰겠다”고 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eric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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