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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비례대표의 덫

입력
2016.03.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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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첫 정당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 사태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부정경선에서 촉발됐다. 2012년 19대 총선 직전 치러진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은 부정으로 얼룩졌다. 대리투표와 불법 당원 동원이 난무해 검찰 수사를 초래했고, 이석기 수사로 이어지면서 결국 당이 공중 분해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비례대표의 어두운 구석이 드러났다. 친박 연대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30세 양정례의 실체가 최대 미스터리였는데, 서청원 당 대표가 17억 원을 받고 비례대표 장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비례대표제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5ㆍ16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제3공화국 헌법에 의해 도입된 이 제도는 “이북 출신 혁명동지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고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 회고록에서 밝혔다. 그 후 비례대표제는 당 대표가 정치자금을 챙기는 돈줄이나 계파 줄 세우기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비례대표의 이전 명칭인 전국구(全國區)가 ‘전(錢)국구’라고 불릴 정도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정치권이 예전보다 투명해지기는 했지만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표(死票) 현상을 보완하는 대의제에 적합한 형태다. 지역 이익을 앞세우는 지역구 의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역 민원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국가적 과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전문가, 직능 대표 등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런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출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게 우선이다.

▦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셀프 공천’과 일부 후보의 자질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위기에 봉착했다. 김 대표는 이번에 사상 초유의 다섯 번째 비례대표가 되면 80세까지 의원을 한다. “비례에 큰 욕심이 없다”고 했던 터라 노욕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국민의당도 안철수 공동대표의 측근이 대거 비례대표 후보에 포함돼 반발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의 갑작스런 비례대표 추가 공모는 경선에서 탈락한 ‘진박 후보’ 구제용이라는 의혹이 짙다. 비례대표가 당 지도부의 전리품화한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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