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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알파고 시대, 인간에게 남겨진 몫

입력
2016.03.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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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알파고’는 바둑이 아니라 ‘차이나타운’이었다.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잔혹한 곳, 영화 ‘차이나타운’의 세계 말이다. 김혜수 씨가 연기한 ‘차이나타운’의 보스 ‘엄마’는 ‘딸’에게 칼침을 맞아 죽어가며 이렇게 뇌까린다. “내가 쓸모가 없네.” 알파고가 승리할 때마다 인간의 쓸모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하게도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는데, 인간은 인공 자궁 안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채 생체 전기를 대주는 기계의 배터리로 사용된다. 아마 인간 종족이 이세돌 9단을 응원한 기저에는 인간의 자존심보다는 멸종 위기종의 불안감이 깔렸지 않았을까.

인공지능은 이미 한참 전 체스경기에서 우승했고 미국 퀴즈쇼에서 챔피언을 따돌렸다. 튜링 테스트 통과한 최초의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 다르파 재난구조 로봇 대회에서 가장 빠르게 임무를 완수한 카이스트의 로봇 ‘휴보’, 그리고 160만㎞를 무사고로 달리며 인간보다 안전하게 운행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왔다. 그런데도 전화교환수 대신 더 많은 휴대전화 관련 직업이 생겼던 것처럼 새로운 일자리와 기술이 나타나리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처럼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 거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대체했던 산업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 오직 1%의 능력 있는 소수만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네스카페 매장에서 로봇 ‘페퍼’가 일을 하고, 고령화 시대에 맞춰 어르신을 옮기는 일을 하는 로봇이 개발 중이다. 로봇이 고용주에게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대만의 ‘삼성’으로 불리는 ‘홍하이’ 대표의 말이 증언한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100만 마리의 동물을 관리하는 것은 내게 두통거리다.” 결국, 빨간 알약을 먹은 후에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정부는 알파고 충격을 교훈 삼아 인공지능 투자를 늘릴 계획을 발표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이야. 인공지능에 뒤처져 자신의 쓸모를 곱씹어야 할 우리 99%의 잉여들. ‘매트릭스’에서는 전쟁으로 하늘이 덮여버린 탓에 태양 빛이 상실되자 인간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반면 영화 ‘엘리시움’에서는 효율이 떨어져 일도 못 하고 돈이 없으니 소비도 못 하는 ‘잉여’ 인간들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에 버려진다. 지금부터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화가 아니라 미래의 배경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직장인도 학생처럼 방학이 있고 교수처럼 안식년을 쓰고 궁극적으로 먹고 살수만 있다면 일은 최소한만 하고 싶지 않은가. 당장 바라건대 기사를 써주는 인공지능 로봇이 이 초고를 써주길.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눈다.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필연적으로 해야 할 일, 작업은 인공세계를 창조하는 일, 그리고 행위는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활동이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에 치우친 삶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귀족처럼 작업과 행위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에 처했다. 일찍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의 발전으로 2030년에는 주당 15시간 일하고, 버트런드 러셀은 하루 4시간만 노동하는 세상을 예견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의 불평등과 궁극의 이상 사이에서 결단할 개인적, 사회적 교양이다. 그 교양이란 인간이란 쓸모로서 가늠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 그러니 무섭게 편중될 자원을 걷어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 함께 살자는 합의와 실천이다. 개인적으로는 고통과 결핍을 느끼는 유한한 생명에게 다정한 존재가 되고, 계산과 답을 내리기보다 사유하고 질문하고, 화석연료 대신 온몸의 생체 에너지를 쓰는 삶을 생각했다. 광화문 거리 현판에 걸렸던 문구 ‘우주가 우리에게 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의 몫이니까.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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