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조연으로 ‘천만 요정’이라 불리는 배우 오달수가 드디어 첫 주연 영화로 관객을 찾았다. 오달수는 영화 ‘대배우’(30일 개봉)에서 20년 동안 연극무대에서 활동한 배우 장성필을 연기하며 주연 데뷔식을 치렀다.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해 온 이력이 있는 오달수와 많이 닮아 있는 배역이다.
오달수는 21일 오후 서울 자양동 한 영화관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마친 뒤 “내가 나온 장면이 영화의 90%에 달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오달수는 완성작을 이날 처음 봤다면서 “몸으로 먼저 느끼는 것 같다.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며 “이제 공개가 됐으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배우’는 연극배우로 살아가던 장성필이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다 영화배우로 성공한 설강식(윤제문)으로부터 영화 출연의 기회를 얻게 되는 이야기다. 극중 이름인 설강식은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의 이름에서 따왔다.
처음에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는 주인공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는 오달수는 “닮았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고 말하면서도 “영화 속 장성필처럼 독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했다면 나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눙쳤다.
그러면서 실제로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과 연기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최민식 선배가 ‘올드보이’ 때 저를 예쁘게 보셨나 보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께서 ‘내가 있는 회사(브라보엔터테인먼트)에서 같이 한솥밥 먹어 볼래?’라고 권해서 같은 식구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극중 장성필과 설강식이 만나는 지점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고 공개했다.
영화 ‘남극일기’로 송강호와 연기하며 비슷한 일화를 갖고 있다는 윤제문도 “2004년 ‘남극일기’ 전까지는 연극무대에서만 연기했느데 ‘남극일기’를 통해 (송)강호 선배를 만났고, ‘네가 연극했던 반만 영화에서 노력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대배우’에서 박찬욱 감독을 연상시키는 깐느 박을 연기한 이경영은 “박찬욱 감독과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박 감독은 연출부였음)와 ‘삼인조’를 함께 한 인연이 있다”며 “박 감독처럼 말투가 느린 점 등이 닮아서 비슷하게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우들 간의 호흡 어땠나?
이경영=“저희는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이처럼, 부부처럼 눈빛만 봐도 서로 원하는 바 감독님이 원하는 바를 읽고 있었던 듯하다. 호흡이라기보다 오래된 사람을 옆에 두고 있던 느낌이다.”
윤제문=“(오)달수형은 같이 극단 생활도 했었고 편했다. 친형처럼. 극중에서 내가 형으로 나오지만 편했다(웃음). 이경영 선배는 촬영장에서 항상 웃고 좋은 기운을 받았다.”
오달수=“현장에서의 호흡이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올해는 제가 현장에서 많이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데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이경영 선배님이셨다.”
-캐릭터가 현실의 오달수와 닮아 있는데.
오달수=“상당히 많이 닮은 부분 있어서 사실 썩 기쁘고 그렇지 않았다. 닮았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 영화 속 장성필 인물처럼 독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생활을 했다면 저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만큼 생활에서 연극하는 게 좋아서 살았었으니까. 그렇지만 성격은 저하고 많이 다른 듯하다.”
-설강식 이름은 어디서 따왔나?
석민우 감독(석 감독)=“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세 분의 이름을 단 캐릭터가 맞다.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을 찾다 보니, 충무로를 대표하고 있는 배우 이름을 해봤다. 설강식이라는 이름이 가장 부르기 쉽고 해서다.”
-장성필과 설강식을 연기하면서 감회가 새롭지 않았나.
오달수= “영화 ‘올드보이’를 할 때 최민식 선배가 나를 예쁘게 보셨나 보다. 나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선배께서 ‘내가 있는 회사에 한 번 들어와서 같이 한솥밥을 먹어 볼래?’라고 하셨다. 그래서 같은 식구가 된 적이 있다. 설강식과 장성필이 만나는 지점은 나와 최민식 선배가 만났던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윤제문=“저도 영화 ‘남극일기’를 시작으로 쭉 영화를 했다. 그 전에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다. 나도 ‘남극일기’때 송강호 선배를 만났다. (송)강호 형님도 연극으로 시작했는데 조언도 해줬다. ‘네가 연극했던 반만 영화에서 노력을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을 해주셨다. 생각이 많이 난다.”
-첫 스크린 주인공으로서 영화 시사 소감은?
오달수=“몸으로 먼저 느끼는 것 같다. 이것저것 엄청나게 처음 보니까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영화 속에서 내가 나온 분량이 90% 가까이 된다. 후시녹음하면서 띄엄띄엄 영화를 보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제 공개가 됐으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갖기로 했다. 하지만 주연이라는 게 부담스럽다.”
-이경영은 누군가(박찬욱)가 떠오르는 연기를 했다.
이경영=“박찬욱 감독과는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와 ‘삼인조’ 때 인연이 있다. ‘대배우’에선 깐느 박이라는 역할은 먼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박 감독과 같이 작업을 많이 해온 석 감독에게 물어보며 연기했다. 기본적으로는 박 감독을 닮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박 감독 같이 말투가 느린 점 등이 닮아 있어서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대배우란?
오달수=“일단 내 생각이지만, 믿음이 가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기다렸다가 보게 되는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연륜이라고 할까. 삶이 묻어 나오는 배우를 꼽고 싶다. 연기 잘하는 20대 젊은 배우들에게는 대배우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결국 연륜, 보기만 해도 삶이 나오는 배우가 아닐까.”
윤제문=“‘연기에 천재가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배우에게)재능은 어느 정도 있어야겠지만 관객들과 같이 늙어가면서 주름도 늘고 나중에 무언가 묻어 나오는 배우가 대배우다.”
이경영=“지구상에 그 어떤 배우도 대배우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연기,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가 대배우가 아닐까 한다. 현재 제게 대배우는 오달수다. 하하.”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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