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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책이라는 생물

입력
2016.03.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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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을 발견했다. 그걸 긋던 당시의 정황이 떠올랐다. 이십 대 후반, 열 오른 마음으로 그어댄 빨간 줄. 당시엔 마냥 열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의 동지를 발견한 기쁨은 잠시뿐, 외려 섣불리 뭔가를 속단하곤 더 섬세한 고민을 가로막았던 것도 같다. 이후, 생각의 맹점을 건드리거나 오래 풀지 못할 문제를 긴 여운과 함께 남겨주는 책들에 더 호감이 갔다. 자기검증을 이끌어내며 반동력을 갖게 되는 독서가 생각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해주었으니까. 이십 대 때 그은 밑줄은 그래서 더 새로웠다. 토씨 하나 바뀐 게 없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변했다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 멋쩍으면서도 신선했다. 치열성의 측면에선 그때가 더 뜨거웠겠으나 열이 식고 나서 한참 후에 확인하게 된 문장의 결은 사뭇 달랐다. 전후 맥락을 찬찬히 뜯어 읽어 봤다. 글에 쓰인 맥락보다 내 머릿속에서 조장해낸 맥락에 의해 문장이 오독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건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한, 전혀 다른 문장일 수 있었다. 그 문장을 필사해봤다. 완전히 다른 뜻으로 읽혔다. 뭐가 더 정확하고, 뭐가 더 옳은지는 핵심이 아니었다. 이십 대의 나와 사십 대의 내가 한 문장 안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게 황홀했다. 책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았다. 물론, 거기 물을 주는 건 독자의 몫일 거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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