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숭없는 그녀들은 내 자화상...한복 곱게 입고 거침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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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숭없는 그녀들은 내 자화상...한복 곱게 입고 거침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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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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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김현정이 암벽등반 하는 자신을 표현한 작품 'Shall We Dance(2014)' 앞에 서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그림을 얼마나 비싸게 만드는데 화가가 배 고파야 해요? 이제 담배 갑에 그림 그리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지난 1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This is our Future’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 데 이어 16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 전관을 빌려 개인전 ‘내숭 놀이공원’을 열고 있는 동양화가 김현정(28)씨는 “주머니에 돈이 천원밖에 없으면 물감을 사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술품이 비싸야 하는 이유에 대한 김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제 키만한 액자 하나에 70만원이에요. 작품이 크면 운송비도 당연히 비싸고요.” 그래서 그는 “화가에게 배고픔을 은근히 강요하는 듯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작가가 ‘돈’ 얘기를 하는데도 결코 밉지 않다. “화가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아다리가 맞아(운이 좋아) 떴다”지만 그에게서 그림에 대한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다들 아시잖아요, 피카소는 평균적으로 2.2일에 한 점을 그렸대요. 그런데 제가 미대에 다닐 때는 한 학기에 3점도 완성을 못했어요. 그러면서도 저는 피카소처럼 되길 꿈꿨죠.” 어느 날 문득 그는 ‘1년에 10장도 채 안 그리면서 화가라고 할 수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어 ‘미친 듯이’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9시에 출근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7시에 퇴근을 한다. 때론 야근도 한다. 김현정 작가는 그림을 ‘일’이라고, 작업실 오가는 것을 ‘출퇴근’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을 ‘1인 창업자’라고 불렀다. 그만큼 치열하게 그리겠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시는 제목에만 ‘내숭’이란 말이 들어있지 그림 속 여성에게서 내숭을 찾을 수는 없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머리를 가지런히 땋은 20대 여성이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집어 먹거나(‘마트 시식회’) 옷을 최대한 탈의하고 체중계에 올라가는(‘마주한 현실’) 식이다. 작가는 그림을 보여주며 중간중간 “마트의 꽃은 시식이죠” “요즘 술을 먹었더니 살이 좀 쪘어요”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림 속 20대 여성이 자화상이라는 그의 설명이 와 닿는다.

작가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내숭을 작품 주제로 추구해왔다. ‘내숭 놀이공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시 제목을)‘시선 시리즈’라고 하면 재미 없잖아요”라고 웃으며 “그냥 편하게 봐주셨음 좋겠어요. 어른들은 제 전시회에 와서 ‘재미있다’ ‘잘 놀았다’ 하시면 되고 아이들은 ‘다음에 전시회 또 갈래’ 정도 반응만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동양화가 김현정이 '내숭동산(2016)' 속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그래서 모두가 한 바탕 놀다 가길 바라며 그림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준비한 게 많다. 자신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 아이들을 위한 눈깔사탕,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부스나 포토 존 등이다. “음식점은 음식 맛이 제일 중요하지만, 인테리어나 서비스도 음식 맛에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저도 전시에 많이 투자하는 거랍니다.”

벌써 ‘잘 나가는’ 작가이지만 고충이 없지 않다.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이 많아서 그런지 오해도 많이 받는다”는 작가는 “그저 그림을 통해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한테 ‘부족한 그림이지만 예쁘게 봐달라’고 하면 누가 보고 싶고 갖고 싶겠어요. 저는 ‘제 그림 너무 재미있죠? 예쁘죠?’ 해요. 부끄러운 그림이었다면 아예 안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전 제 그림이 너무 자랑스럽고 예뻐요.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봐 줬음 좋겠어요.”

김현정 작가는 개막 전날 진행된 인터뷰 동안 “행복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며 이번 전시에 “관객들이 정말 많이 올 것 같은 ‘필(Feel)’이 온다”고 했다. ‘내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김씨의 전시는 그가 기운을 느낀 대로 인기가 뜨거울 정도다. 개막 5일만에 누적 관객 1만5,000명을 돌파했고 SNS 팔로워는 10만을 넘었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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