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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부산영화제' 위기

입력
2016.03.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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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긴급기자회견에서 영화인들이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영화인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보이콧을 선언하고 있다. 이정현 인턴기자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긴급기자회견에서 영화인들이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영화인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보이콧을 선언하고 있다. 이정현 인턴기자

국내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영화제 참석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혀 국내 대표적인 문화 축제인 부산영화제가 반쪽 행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영화인 비대위)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영화인들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은 영화인 비대위 공동대표와 이춘연 영화인 비대위 고문, 방은진 감독, 정윤철 한국영화감독조합 부대표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영화인 비대위는 지난해 부산시가 이용관 위원장 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알려진 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9개 영화단체가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주장하며 결성한 임시 단체다.

비대위는 이날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자문위원 68명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법적 대응까지 나서면서 영화제에 대한 노골적이 간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영화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을 넘어 국가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 영화제를 낡은 정치적 잣대로 덧칠한 최악의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부산영화제는 최근 독립성 강화를 위해 정관 개정을 추진 중이고 이를 위해 영화인 68명을 신규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부산시는 새 자문위원의 위촉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지난 14일 부산지방법원에 자문위원 선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대위는 “부산시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수많은 한국 영화들을 부산에서 촬영해 온 영화인들의 중재노력을 오히려 외부 불순 세력의 개입이라고 모욕한다면, 더 이상 부산국제영화제에 발을 디딜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이어 “이에 모든 영화인들은 각 단체별로 총의를 거쳐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참석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강력히 결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산의 레드 카펫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텅 비게 될 것이며, 부산을 찾는 전국 관객들의 발걸음 또한 뚝 끊길 것이다”고 강력 경고했다.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인들의 갈등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 요구했고, 영화제가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부산시는 영화제에 대한 감사 실시와 이용관 위원장사퇴 종용으로 영화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렀고, 지난 2월 이 위원장을 재선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촉시켜 파장이 확산됐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자회견문 전문>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영화인들은 올 해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할 것이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자문위원 68명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법적 대응까지 나서면서 영화제에 대한 노골적이 간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영화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영화인들마저 영화제를 장악하려 모여든 불순 외부 세력처럼 몰아가더니, 심지어 각종 매체를 통해 서울의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음해성 유언비어까지 퍼뜨리며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이는 영화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을 넘어 국가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인 영화제를 낡은 정치적 잣대로 덧칠한 최악의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2014년 신임시장으로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겸직하게 된 후 ‘다이빙벨’ 상영을 빌미로 영화제를 정치적 이념의 전쟁터로 변질시킨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에 동조한 부산시의 행태를 착잡하게 지켜보며, 우리는 끝까지 인내심을 잃지 않고 영화제와 부산시 양자 간의 화해와 소통을 위해 꾸준히 중재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은 도리어 영화인들을 분순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부산 시민들과 영화인들을 이간질 시키는 거짓말까지 일삼고 있으니, 과연 이 막장 드라마의 종착점은 어디란 말인가.

단언컨대,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의 소유물이 아니다. 비록 부산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했지만, 20년 전 영화인들과 부산 시민들이 남포동에서 탄생시킨 이 멋진 영화제는 여전히 그 민간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아울러 영화제는 오로지 부산 시민만의 것도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과 나아가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함께 영위하는 소중한 공동의 문화적 자산이다. 그렇기에 철저한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영화제 조직 운영의 원칙인 정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20년이나 자율적으로 별 탈 없이 운영되어온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에게 벌어진 사실상의 외부 '검열' 및 영화제 집행위원장 해촉 사태에서 받은 충격과 상심이 너무 컸기에, 불미스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온 힘을 기울여 나가고 있었다. 다수의 현장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위촉에 흔쾌히 응한 것도 임시총회의 정관 개정을 통해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원천적으로 확보될 것을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집행위원장을 끝내 해촉시켰던 서병수 부산시장 또한 임시총회를 앞두고 스스로 조직위원장에서 먼저 물러났기에, 늦었지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며 모두들 적지 않은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부산시는 돌연 임시총회 자체를 인정치 못하겠다면서, 매체를 총동원해 영화인들은 난데없이 불순 세력으로 몰아가더니 급기야 자문위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다. 있지도 않은 영화계 권력을 운운하며 혼탁한 밥그릇 싸움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치졸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탄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각고의 인내심 속에서 영화제의 정상화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했으나 결국 쇠귀에 경 읽기였던 것이다. 결자해지. 더 이상 망측하고 남루한 꼴을 보기 전에 시작한 이들 스스로 끝을 봐야 할 때가 마침내 임박한 것인가.

우리는 그 누구도 ‘영화인들이 없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끔찍한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부산시가 예산 지원을 이유로 계속 영화제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긴 채, 부산시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수많은 한국 영화들을 부산에서 촬영해 온 영화인들의 중재노력을 오히려 외부 불순 세력의 개입이라고 모욕한다면, 더 이상 부산국제영화제에 발을 디딜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에 모든 영화인들은 각 단체별로 총의를 거쳐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참석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강력히 결의할 것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산의 레드 카펫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텅 비게 될 것이며, 부산을 찾는 전국 관객들의 발걸음 또한 뚝 끊길 것이다. 이루긴 어렵지만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성처럼 영화제가 허망하게 사라지지 말란 법은 없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시가 원하는 것이 과연 그것인가. 부디 영화인들이 마지막 애정을 쥐어짜 보내는 엄중한 경고와 최후통첩을 귀담아 듣기 바란다.

우리의 요구

-서병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를 즉각 실행하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관 개정에 전향적 자세로 나서라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위촉 자문위원 68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철회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라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총회 의결 없는 집행위원장 해촉 등 영화제를 훼손한 일련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이상의 문제에 있어 부산시가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016년 3월 21일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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