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IS와 전쟁중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지난해 11월 13일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4개월여. 프랑스는 정부ㆍ민간 할 것 없이 각 분야에서 조용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파리 시청에 따르면, 지난해 파리 테러발생 직후인 12월 관광객 수는 2014년 12월 대비 16%나 급감했다. 특히 씀씀이가 커 관광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수는 무려 60%나 줄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정부는 오는 6월부터 파리에서 시작되는 유럽축구 국가대항전 ‘유로 2016’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2024년 올림픽 개최권을 가져오는 것이 테러 이미지 불식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패트릭 카네르 도시청년체육부장관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2024년은 프랑스가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며 “올림픽은 각종 매체를 통해 국가 이미지가 최고로 많이 노출되는 이벤트인 만큼, 안전한 프랑스를 대내외에 알리고 국민들에게는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올림픽 개최지는 내년 9월 페루 리마에서 결정되며 현재 파리를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로마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유로 2016의 주 개최도시이자 올림픽 유치 활동 당사자인 파리시청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먼저, 테러 이후 관광객 유입 추이를 예측하기 위해 미국 9ㆍ11 테러 사례를 꼼꼼히 연구했다. 또 ‘안전 도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자 라이벌인 안 이달고 파리시장과 발레리 페크레세 일드 프랑스 레지옹 지사는 뚜렷한 정치 노선 차이에도 불구하고 파리 관광 마케팅과 올림픽 유치를 위해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테러 발발 3개월 만인 올해 2월부터 파리 관광객 수는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주말인 12일 대표적 관광 명소인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에는 오가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에펠탑 주변 역시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탑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장 프랑수아 마르탱 파리 스포츠ㆍ관광 보좌관은 “테러 발발 6개월째인 오는 5월이면 예년 수준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계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특히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의 움직임이 발빠르다. 스타트업 업체 투자기관인 bpi프랑스는 파리에 15만㎡ 규모의 ‘테크 새비네이션’이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스타트업 업체들이 프랑스에 진출할 때 이곳에서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주로 디자인과 하이테크 업종을 중심으로 4,00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출범 3년여 만에 연간 500만 유로(66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할 정도로 급성장 하고 있다. 한국과는 오는 24일 프렌치테크 허브를 서울에 설치하고 양국간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업무가 본격 시작된다. 세실 브로셰 bpi프렌치 허브담당 디렉터는 “젊은이들이 창업의 꿈을 키워나가는 데 파리 테러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며 “테러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순간 우리는 테러를 당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예술의 도시답게 문화ㆍ예술계도 테러의 아픔을 씻어내려 노력 중이다. 파리 예술의 중심 몽마르뜨 언덕에는 여전히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고, 지난해 9월 국립 샤이요극장에서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 등재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이 재연되기도 했다. 디디에 데샹 샤이요극장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예술 활동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며 “오히려 외국 문화계와의 교류를 활발히 함으로써 대 테러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기적이고 ‘쏟아놓기 식’인 정부 대응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1월 샤를리 엡도 테러와 11월 파리 테러 이후 치안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테러 방지책을 내놓고 있다. 먼저, 3년 동안 대테러 정보ㆍ경찰요원을 1,300명 추가 고용하고 사법ㆍ교정 분야 등 치안 보조기관 인력을 2,600명이나 늘렸다. 온라인에는 IS의 주장을 반박하는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또 테러 자금줄을 끊기 위해 일정 금액을 넘는 신용 카드는 신원 증명을 해야 발급받을 수 있고, 현금도 1회 1,000유로 이상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밖에 시리아로 떠나려는 사람을 가족과 친구들이 당국에 미리 신고토록 하는 ‘녹색 전화번호’, 테러 의심자들의 여권을 사전에 빼앗을 수 있는 ‘여권 박탈제’ 등 테러 이후 수백 가지에 이르는 정부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국책 연구기관인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마크 에케르 연구원은 “단기적ㆍ기술적 대책을 쏟아놓는 바람에 ‘테러 대책 인플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단기 대책에만 기댈게 아니라, 대테러 교육 프로그램 등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국민들이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군(軍)이 국내 치안에 가담하도록 하는 법안을 놓고도 논란이 번지고 있다. 프랑스군은 테러 직후 군 병력 1만 명을 파리시내에 투입했다. 군 병력의 활동을 국외에 국한시킬게 아니라 치안 유지에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 곳곳에서는 총을 맨 군인들이 대오를 갖춘 채 순찰하는 모습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쓸데 없는 불안감을 부추길 수 있고 군과 경찰의 임무 경계가 모호해 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파리=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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