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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까마귀 허스키

입력
2016.03.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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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마귀 울음소리가 곧잘 들린다. 환청인가 싶을 정도로 현묘하다. 고개를 들고 둘러보아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둘기나 참새 떼가 돌아다니는 게 고작이다. 소리는 우렁차나 보이지는 않으니 더욱 신비로운 느낌. 까마귀 소리는 여느 새 울음소리와 다르게 맑지도 청아하지도 않다. 중저음으로 목젖을 긁어대는 탁음이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소리가 싫지 않다. 군대 시절, 사격장에서 본 어른 팔뚝만한 검은 까마귀의 모습에 감탄한 기억이 오래 남은 까닭인지 모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엄하고도 고고한 ‘포스’를 그때 느꼈었다. 나뭇가지에 오롯하게 홀로 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결연함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흔히 흉조라 일컬어지는 이유를 이해는 하나, 인정은 하기 싫었었다. 그 새카만 듯 창백한 소리는 예컨대 계면조의 수리성에 가깝다. 언뜻 최백호나 임재범의 음색과 닮은 것도 같다. 고독이 하도 깊어 외려 독보적인 공격성까지 겸비한 듯한 소리. 문득 차갑게 ‘냉각된 슬픔’ 같은 게 떠오른다. 줄줄 흘러내리지도 허우적대지도 않으면서 또렷하고 진하게 우려낸 슬픔의 응결체. 기분 탓일 수도, 주로 해뜰녘이나 해질녘에 듣게 되어서일 수도 있다. 그걸 듣는 마음은 슬프기도 단호하기도 하다. 끝이거나 시작을 알리는 소리.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더 강렬하다. 그렇게 한동안 울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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