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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ISA 탓에 은행원 된 것 후회했다”

입력
2016.03.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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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최고 50개씩 실적 압박

불완전판매 감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은행원이 된 걸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모 시중은행 4년차 직원)

‘비과세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출시 나흘 만(14~17일)에 58만6,281명이 가입하고, 누적 가입 금액만 2,714억원에 달하는 등 나쁘지 않은 초반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적표 이면엔 은행원들의 말 못할 애환이 서려있다고 하는데요. 요즘 은행원들은 하나 같이 “ISA 판매 실적 압박 탓에 괴롭다”고 입을 모읍니다. 은행 별로 차이는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한 명당 10~50개씩 ISA상품을 팔라고 할당을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ISA를 파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A 은행원은 “고객이 먼저 ISA 상품 가입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대출 상담이나 공과금 납부를 위해 창구를 찾은 손님에게 ISA 가입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품 설계가 복잡한 ISA는 설명에만 최소 20~30분이 걸려 육체적 피로감도 크다고 합니다.

일부 은행들은 고객을 직접 접촉할 일이 없는 본부 소속 직원들에까지 한 명당 10개씩 판매 할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부 직원들은 주로 친인척, 동창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려 ISA 가입을 권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계좌이동에 ISA까지 권해야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B은행원)라고 하네요. 계좌이동제는 지점 소속 은행원 한 명당 이달 말까지 많게는 100계좌 이상씩 할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입자 수 기준으로 ISA 판매 할당이 내려지며 계좌만 트고 실제 가입 금액은 미미한 ‘깡통 ISA계좌’가 속출할 거란 우려 역시 높아집니다. 실제 ISA 출시 후 나흘 간 실적을 보면 은행에서 ISA에 가입한 사람 수는 55만3,423명인데, 가입 금액은 1,716억원(1인당 평균 31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증권사에서 판매된 ISA의 평균 가입액(305만원)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에 ISA 활성화를 주문하면서도 “불완전판매는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은행원들은 더욱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인데요. 특히 금융당국이 ISA의 ‘아웃바운드’영업(기업 등을 찾아다니는 외부 영업)을 금지한 것이 타격이 큽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ISA는 객장 내에서만 판매하도록 행정지도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ISA 판매 실적을 채우려면 창구를 찾는 손님 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 은행원들 설명입니다. C은행원은 “규정위반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웃바운드 영업을 하도록 사실상 강요받고 있는데 이러다 적발되면 처벌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고 토로했습니다. 금융당국의 시선을 의식한 은행들이 직원들에게 ISA 판매를 압박하면서도, 직원 한 명당 하루 판매량을 약 5개 이하로 제한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며 직장 생활이 예전보다 팍팍해진 곳이 은행업계만은 아닐 겁니다. 그나마 안정되고 처우가 좋은 은행원 일자리는 구직자에게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은행원들의 고민을 배부른 소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할당된 실적을 채우기 위해 규정 위반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로 내몰리는 상황이 결코 정상은 아니다. 그러다 불안전판매가 늘어나면 금융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이들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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