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날선 대립에 다시 이목
2004년 새천년민주당 대소동
추미애 선대위장 측근이 빼돌리자
조순형 대표 도장 새로 파 대응
선거철·공동대표 체제 아래선
"누구에 권한 있나" 신경전 다반사
공천권을 놓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사이의 날 선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때 아닌 옥새(玉璽ㆍ왕의 도장) 논쟁이 뜨겁다. 김 대표가 공관위의 공천 결과를 추인하지 않는 방법으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한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에도 “공관위가 당헌, 당규에 위배된 결정을 하는 경우 최고위원회에서 의결되더라도 당 대표로서 공천장에 도장을 못 찍는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김 대표의 도장 찍는 권한을 무력화하기 위해 비대위 구성까지 거론한 상태다.
공직선거법 49조 2항에 따르면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자 등록을 할 때 정당 대표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가 필요하다. 때문에 김 대표가 공천장에 도장을 안 찍으면 새누리당 후보자 등록은 불가능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옥새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은 야권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에서 벌어진 ‘옥새파동’ 이다. 당시 민주당은 상당수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떠났고, 남은 인사들은 당시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다 여론의 거센 역풍에 시달렸다. 결국 조순형 대표는 위기 타개를 위해 추미애 의원에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그러나 당 대표와 선대위원장, ‘머리’가 둘이다 보니 곳곳에서 마찰이 일어났고, 결국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대표 직인이 찍힌 공직후보추천자 명단을 선관위에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추 위원장은 총선(4월 15일)을 보름 앞두고 호남과 수도권 중진의원 4명의 공천을 취소하는 내용으로 공천장을 만들었다. 공천장에 찍힌 당과 당 대표 직인은 한 당직자가 몰래 빼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조 전 대표는 이를 무효라며 반발했고, 선관위에 민주당과 대표자 직인 변경등록 신청을 제기한 뒤 새로 판 도장을 찍은 공천장을 만들어 공천마감 시간 5분 전에 가까스로 등록을 마쳤다. 당시 선관위는 추 위원장, 조 대표 양측이 찍은 ‘옥새’ 중 어느 것이 진짜냐를 두고 논의한 끝에 조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추 위원장이 짠 공천 명단은 무효가 됐고, 당시 민주당은 9석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후에도 옥새를 손에 쥐기 위한 신경전은 이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야권 통합, 합당이 진행될 때마다 공동대표 체제가 출현하다 보니 도장을 찍는 권한(인영권ㆍ印影權)은 늘 민감한 이슈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간 통합 논의 과정에서 손학규ㆍ박상천 공동 대표 중 누가 당 대표 도장을 찍는 법적 상임대표를 맡느냐를 놓고 양측이 대립했다. 결국 손 대표가 상임대표를 맡고 대신 박 대표는 호남 공천권, 비례대표 후보 추천권 일부를 보장 받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2014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할 당시에도 두 사람 사이 도장 찍는 권한을 놓고 갈등이 이어졌다.
야권 한 인사는 “2004년 파동의 트라우마로 통합 협상을 할 때마다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옥새”라고 전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의 요청으로 당에 왔을 때도 이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결국 문 전 대표는 중앙위원회를 통해 총선까지 대표 권한을 김 대표에게 넘기면서 잡음을 없앴다. 2004년 도난 사건까지 벌어지다 보니 각 당은 옥새 보관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 특히 더민주 측은 “당사 금고에 보관돼 있고 비밀번호는 담당자 한 사람만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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