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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옥새(玉璽) 투쟁

입력
2016.03.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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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 군주가 사용하던 도장 옥새(玉璽)는 왕조와 국가의 상징으로 절대적 권위가 부여됐다. 동양에서 옥새 사용이 제도화한 시기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치세기였다. 진시황은 천추ㆍ전국시대의 유명한 보석인 화씨지벽(和氏之璧)에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ㆍ하늘 명을 받아 영원히 번창함) 여덟 글자를 새겨 옥새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옥새는 진 멸망 후 유방의 한나라로 넘어갔다. 이후 위ㆍ오ㆍ촉 삼국시대 등을 거쳐 왕조에서 왕조로 피바람을 일으키며 전해지다 당 마지막 황제 이후 사라졌다.

▦ 군주가 문서로 내린 지시는 옥새가 찍혀야 효력을 발휘했다. 왕조와 왕위 계승에도 정통성을 인정 받으려면 반드시 옥새가 필요해 경쟁자 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왕조시대의 정치사를 옥새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사라고 하는 건 그래서다. 우리 역사에서도 옥새를 둘러싼 숱한 싸움이 있었다. 조선조 초 이방원이 형제들과 개국공신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옥새를 가지고 함흥으로 가버렸다. 옥새를 받으러 보낸 차사들이 족족 죽임을 당한 데서 한번 가면 못 돌아온다는 함흥차사란 말이 생겨났다.

▦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출현을 걱정하는 시대에 케케묵은 옥새 얘기가 정치판에 왁자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비박계 공천 학살에 항의해 이한구 공관위의 공천안에 당 대표 직인을 찍지 않고 버티면서다. 김 대표는 단수ㆍ우선 추천제를 남용해 당헌ㆍ당규를 위반한 8곳의 공천결정 재심을 요구한다. 공직선거법 상 당의 후보자를 선관위에 등록할 때는 당 대표의 직인이 필요하다. 상향식 국민공천제를 약속하고서도 이한구 공관위에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김 대표가 마침내 회심의 반격수를 찾은 것일까.

▦ 친박계의 대응수는 현 최고위원회를 해체해 김 대표를 배제한 뒤 비대위 체제를 꾸리는 것이다. 하지만 선관위 후보등록이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상으로 쉽지 않은 수여서 김 대표와 친박이 벌이는 건곤일척의 승패를 점치기 어렵다. 어째 공당의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치열한 바둑 대국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있지만 감동은 없고 추악한 권력투쟁의 혐오만 부른다. 국민들은 승패를 기다리기보다는 아예 바둑판을 확 엎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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