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은 아마 5단의 실력을 지닌 연예계 유명한 바둑 애호가다. 지난 15일 바둑 TV에서 생중계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다섯 번째 대국 해설자로 나서기도 한 그는 “1국부터 4국까지 여러 번 복기하고 직접 바둑을 놓아” 보며 세기의 대결에 관심을 보였다. “근 10년 만에 바둑 때문에 밤을 샜다”는 김장훈은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 대해 18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람이 두는 바둑의 낭만도 찾고, 인공지능에 대해 각성도 하게 된 경기였다”며 의미를 뒀다.
“경기 결과(이 9단의 1승4패)도 의미가 커요. 처음엔 무조건 이 9단이 5대0으로 이길 줄 알았지만 그렇게 됐으면 인간이 교만에 빠졌을 테고, 3패 후 거둔 1승으로 더 값진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보여줬잖아요. 이 9단이 이긴 한 판에 인공지능의 버그성 오류란 헛점을 보기도 했고요.”
김장훈은 어린 시절 천식에 악성빈혈로 몸이 약해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바둑은 그런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바둑을 처음 배운 건 그의 부모님 차를 운전해주던 기사를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운전기사분이 10급 정도였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깔고 두던 바둑수가 24개에서 18개 줄었고, 제가 나중엔 이겼죠. 놀라시면서 소질 있는 것 같다고 부모님께 바둑으로의 길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죠. 그 때 제가 동네 기름집 아저씨부터 세탁소 아저씨까지 깨고 바둑으로 (서울)사교동을 평정했거든요. 병원 의사 선생님도 이기고, 하하하.”
바둑에 흥미를 보인 김장훈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바둑 해설가로 활동하던 고 김수영 7단이 운영하던 바둑 교실을 찾아갔다. 툭 하면 쓰러지는 아들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 걱정한 김장훈의 어머니는 아들의 바둑 프로 기사 입문을 꿈꿨다. 하지만, 역시 체력이 안 돼 바둑 기사의 꿈도 접었다.
“바둑 교실을 꾸준히 나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어려선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링거 맞고 살 정도로 몸이 안 좋았거든요. 결국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 교실 나가는 것도 포기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바둑반에 들어갔는데, 그냥 취미로 하기로만 하고 이후엔 소소한 낭만으로 남게 된 거죠.”
그는 바둑의 매력으로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는, 늘 새로운 수 대결이 좋았다”는 걸 꼽았다. 바둑 속 경우의 수는 최대 250의 150승으로, 천문학적 수에 달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직관에 의존해 경우의 수를 좁혀나가고, 바둑은 두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판이 펼쳐진다. 구글이 알파고의 상대로 이 9단을 선택한 이유도 이 9단이 가장 창의적인 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바둑의 예측불가성의 매력에 빠진 김장훈은 “바둑을 두다 상대의 묘수가 나오면 전율이 와 운 적도 있다”고 했다.
“보통 컴퓨터 게임은 하다 보면 끝이 보이잖아요. 끝을 깨기 위해 혹은 원하는 점수를 따기 위해 오락실에서 두 달 동안 돈 때려 박으면서요. 그런데 바둑은 수가 무궁무진해 매뉴얼 하나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게임이죠.”
김장훈은 바둑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웠다”다고 했다. 그에게 바둑은 “삶의 나침반”이다. 노래하며 혹은 일상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바둑에서 십계명과 같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을 떠올린다.
“바둑의, 공격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는 공피고아(攻彼顧我)가 제 독도 홍보 전략의 출발이었죠. 캐나다 토론토 도서관에 한국 서적 관련 구입비로 2만 달러를 기부한 것도, 우리가 해외에 독도 문제를 알리는 노력을 너무 등한시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최근 사회 전반에 바둑 열풍이 불면서 바둑 용어가 실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김장훈은 이 시대에 바둑이 필요한 이유로 “끝없이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걸 꼽기도 했다.
“바둑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복기예요. 경기에 져 아픈 것도 다시 놓으며 곱씹어야 하는 게 바둑이죠. 그걸 수 없이 반복하고요. 그러면서 지는 걸 배우고, 질 때도 돌을 놓고 머리를 숙이는 예까지 갖춰야해요.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지는 법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일을 알려주는 게 바로 바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기원 홍보대사를 맡으며 바둑 전도사로 나선 그지만, 이 9단과 알파고의 계기로 사회가 관심을 보여야 할 새로운 화두는 “인공지능”이란 의견도 들려줬다. 김장훈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첨단 무대 장비를 만드는 협업을 하는 등 문화와 과학의 협업에 관심이 많은 가수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힘을 보여줬잖아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도 인공지능의 한 부류고, 경제의 차세대 성장 엔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사물인터넷 올림픽을 만들어 그 흐름을 이끌어보는 건 어떨까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