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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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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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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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성과 정당성

카를 슈미트 지음ㆍ김도균 옮김

도서출판 길 발행ㆍ344쪽ㆍ2만5,000원

노년의 카를 슈미트. 도서출판 길 제공

중국집 탕수육을 앞두고 ‘찍먹파’와 ‘부먹파’가 늘 싸운다면, 총선 같은 거대 정치 이벤트 앞에서도 ‘차선이라도 무조건 찍자’는 파와 ‘이렇게 주어지는 선거구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파가 늘 싸운다. 총선 시즌을 맞아 각 출판사들이 내놓고 있는 정치에 관한 책-‘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사계절)‘우리의 민주주의거든’(글항아리)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다른세상)-은 대개 이 범주 안의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이 범주를 뛰어넘는 주장도 있다. ‘유력인사들에 대한 인기투표’가 되어버린 선거 대신 인구통계학에 따라 기계적으로 대표를 분배하는 ‘대표표본주의’(Demarchy), 아예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배분하는 ‘주사위주의’(Klerostocracy), ‘로또주의’(Lottocracy) 같은 것을 도입하자는 얘기다. 괜히 하는 농담이 아니다. 이지문(연세대)처럼 진지하게 추첨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이도 있다. 중국에선 민주적 선거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주장을 거부하는, 관변 이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런 논란이 많은 것은 인민의 뜻을 잘 반영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이고, 또 잘 반영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이 민주주의에선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딱 맞춰 카를 슈미트의 ‘합법성과 정당성’이 나왔다.

1932년, 그러니까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히틀러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에 나온 이 책 자체는 불과 130여쪽에 불과하다. 본격 저서라기보다 당시 혼란스러운 독일 정치 상황에 응답하기 위한 긴급 팸플릿 성격이 짙다. 분문 자체는 당시 정세에 대한 간결한 분석과 결론만 담겼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열심히 읽어야 할 대목은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달아둔 긴 해제다.

전체 인민의 열렬한 지지는 민주적 정당성인가. 그리고 이런 민주적 정당성은 과연 합법성을 넘어설 수 있는가. 카를 슈미트는 '합법성과 정당성'에서 이를 되물어 본다. 도서출판 길 제공

알려진 대로 슈미트는 1919년 만들어진 바이마르헌법에는 두 가지 다른 요소가 뒤섞여 있다고 봤다. 하나는 자유주의, 합법주의를 지향하는 의회제 통치다. 다른 하나는 인민의 민주적 의사에 기초한 대통령제 통치다. 앞의 것은 합법성, 뒤의 것은 정당성이다.

이렇게 대립구조를 짜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 전체의 의지이다. 그렇다면 정당성이 합법성보다 우위에 선다. 솔직히 이런 결론을 위해 일부러 합리성과 정당성이라는 대립구도를 짜냈을 지도 모른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의회보다 강력한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펼치는 방식으로 당대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봤으니까. 슈미트는 곧 이어 ‘나치의 철학자’가 됐다.

고전이라면 대개 지금 우리와 별 상관없는 책으로 간주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크게 두 가지 점이다.

첫째는 슈미트의 논의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상사태는 사전에 명문으로 구체적으로 규정될 수 없고, 기껏해야 국가에 극도로 위험한 상태와 같은 식으로 추상적으로 정해진다.” 권력자가 비상사태라 규정하면 비상사태인 게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비상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헌법의 수호자다.” 의회는 뭐하느냐고? “인민의 통일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정당들에 의해 인민이 개별 이익집단들로 쪼개져서 대표될 뿐이다.” 대통령의 위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의회가 특정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은 전체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려고 한다.” 대통령이 인민 전체 의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하느냐면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므로 대통령의 비상권력은 정당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정당성이 옳았는지 여부는 “인민의 ‘옳소’라는 환호와 전폭적 지지”가 있는지 보면 된다. ‘환호 민주주의’ ‘갈채 민주주의’다. 이처럼 대통령의 비상대권은 “의회의 권한 남용으로 초래된 난국을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 뒷마무리”하는 행위다. 물론 이런 분석은 “헌법폐지적 독재자를 마치 헌법수호적인 독재자인 것처럼 미화하는 시도”다. 어떤 특정 국면을 비상으로 규정하고 그 비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비상대권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우리 헌법 역시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점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가 바이마르헌법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가져왔고, 이 DNA가 지금까지도 은근히 이어지고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김종인’으로 상징되는 경제민주화 조항 같은 것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렇게 보면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상범(동국대)은 바이마르헌법에 내재된 비상대권의 문제가 우리 헌법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군부독재 같은 독재체제가 오랜 기간 동안 가능했고, 지금도 비록 비현실적이라 타박 받을 수는 있어도 헌법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막스 베버가 더 오래 살았다면 과연 나치에 찬성했을까라는, 호사가들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슈미트가 베버의 제자이기도 하거니와,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상을 지켜보던 베버 역시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머신’이라 이름 붙인 열렬한 정치추종자집단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갔으니 말이다. 책엔 나름의 설명이 나온다. ‘합법성과 정당성’이라는 책 제목 자체가 힌트다. 다만, 논리야말로 가장 손쉽게 배반하는 것이니 상상까지 완전히 덮어버릴 필요는 없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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