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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맞서는 실질적 무기, 인문학에서 찾다

입력
2016.03.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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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정여울 지음

민음사 발행ㆍ352쪽ㆍ1만6,500원

『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
『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 『리어왕』에서 『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 이제 인문학 운운은 질렸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고 우리의 무력함을 매일 실감케 하는 나날의 연속에서, ‘또’ 인문학 책이라니. 고개부터 내젓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영화, 문학까지, 늘 편식 없이 신뢰할 만한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정여울’이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 그 냉담함을 거둬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삶의 굴곡마다 펼쳐 들고 밑줄 그은 책 속의 문장들에서 인간의 가치를 길어 올린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쌓아 올린 무용한 지식들이 아닌, ‘현실에 맞서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무기’이자,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타인의 도서추천목록을 엿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인문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책에서 언급되는 이름들이 가볍지 않다. 호메로스에서 시작해 안티고네와 데리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인물들은 문학, 철학, 정신분석학, 역사학 등 인문학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투성이의 신데렐라는 ‘어떠한 환멸이라도 참고 견디는 오랜 기다림, 어떠한 굴욕도 견디어 내는 불굴의 자존심, 외부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끈질기고 참을성 있는 희망’이며,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를 지킴으로써 독재자의 철통같은 권력마저 뒤흔든 숨은 혁명가’이다. 괴테는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성을 키워주는 소중한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세계는 만지고 다듬고 고칠 수 있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젊은이’다.

인간을 위해 신으로부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불굴의 용기를, 오두막 한 채와 검은 빵, 물만으로 산 소로에게는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수잔 손택에게서는 연민과 공감의 힘을, 시인 김소연으로부터는 사물 깊숙이 배어 있는 존재의 슬픔을 읽어내는 힘을 배운다. 저자가 새삼스럽게도 인문학을 소환하는 것은 인간에게 여전히 ‘숭고함’이 남아있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지금 필요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을 ‘공부할 권리’만은 내어주지 말자는 위로까지 담아서 말이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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