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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잘못 온 편지

입력
2016.03.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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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에 편지가 한 통 꽂혀 있었다.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가 친필로 적혀 있는 편지였다. 주소는 맞았으나 수신인이 내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여자 이름이었다. 발신인의 주소는 경기도 일산. 하얀 편지봉투에 정갈하고 깔끔하게 써 내린 글씨체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편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요즘도 이런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반갑기도 했다. 탁자 위에 편지를 두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뜯어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영어로 적힌 발신인 이름은 애칭이거나 별명으로 보였으나 왠지 남자가 분명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서양속담을 차용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라는 제목의 중국 스릴러 영화가 떠올랐다. 섬뜩하고 비릿한, 왠지 누군가 몰래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뜯어 읽으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같은 층 맞은편 집 우편함에 편지를 꽂아두었다. 다음 날 오후, 앞집 우편함이 비어있었다. 끝자리에 2라 적어야 하는 걸 1로 적어 생긴 실수였을까. 직접 불러준 주소를 잘못 알아들었던 걸 수도 있다. 이사 온 지 3개월 여 지난 앞집 사람이 누구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번도 마주친 적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도시 일상의 부조리한 고독을 건조하게 묘파하는 게 장기인 친구 소설가가 떠올랐다. 얼마 전 쓰다 말았던 손 편지를 다시 쓰고 싶어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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