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잘 못 쬐고 밤엔 과도한 조명
생체리듬 교란되며 불안ㆍ충동 생겨
개인 처벌로만 해결할 수 없어
분쟁 사전 해소하는 방안 등 마련을
지난해 11월 광주 북구 문흥동의 한 건물(8층) 옥상에서 김모(39)씨가 무게 1㎏ 짜리 돌을 사람들이 지나는 횡단보도를 향해 던졌다. 다행히 돌에 맞은 보행자는 없었지만,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돌에 맞아 트렁크 덮개가 푹 찌그러졌다. 주변 시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수시로 ‘욱’하고 화가 났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이런 식으로라도 풀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김씨는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는 시도는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그의 행동은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에 해당한다. 의학용어로 ‘외상 후 격분 장애(PTED)’로 불리는 분노조절장애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믿으면서 증오나 분노, 무력감을 장시간 떨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분노조절장애에 빠진 사람들은 화를 못 참고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상 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 쉽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분노의 감정이나 상태를 ‘부들부들’이라고 축약해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는 등 현대인의 분노 표출은 상시적이다. 분노로 인한 충동범죄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변호사협회가 주최한 '현대인의 분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토론회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는 화를 참았을 때 동반되는 불안이나 우울, 죄책감 등을 견디기보다는 화를 강하게 내면서 고통스런 감정을 회피하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경쟁 등 스트레스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 탓이 크고, 도시화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도 원인으로 꼽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헌정 고려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낮에 충분한 햇빛을 쬐지 못하고, 밤에는 과도한 조명에 노출되는 등 인간 본래의 생체리듬이 교란되면서 수면장애나 불안감, 충동성이 생겨나기 쉽다”고 말했다. 권일용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범죄행동분석팀장은 “최근 5년 전부터 한국사회의 범죄 트렌드로 ‘묻지마 범행’ 등 충동범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이 범죄자들에서는‘너마저도 나를 무시하느냐’는 자존감의 훼손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은경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차장은 “현대인의 분노 폭발은 개인의 처벌로만 해결할 수 없다”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나 법원이 대화를 통해 분쟁을 사전에 해소하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도 “학생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세련되게 절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인성교육 방향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분노조절장애가 상당부분 정신 질환과 관련이 있는 만큼 개인 차원에서는 정신과 진료를 통해 자신의 정신 건강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안용민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세가 심각한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자신의 불안과 초조함을 인지할 수 있는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우리사회가 분노조절장애를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흔한 정신 질환으로 받아들이고, 진단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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