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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잔인한 우정’…음주운전 숨기려 다친 친구 방치해 죽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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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잔인한 우정’…음주운전 숨기려 다친 친구 방치해 죽음으로

입력
2016.03.1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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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월 29일 저녁 A(21)씨는 절친인 중학교 동기 B씨와 세종시 한 노래방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어릴 적 얘기 등을 나누며 회포를 풀다 보니 소주를 3병이나 나눠마셨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시각 A씨는 B씨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집에 가기 위해 핸들을 잡았다. 헬멧은 A씨만 썼다. 집으로 가던 중 커브길에서 핸들을 제 때 조작하지 못해 오토바이가 8m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A씨는 헬멧 덕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B씨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A씨는 음주 운전한 것도 모자라 사고까지 나자 겁이 덜컥 났다. 결국 다친 B씨를 그대로 둔 채 혼자 인근 아파트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가 119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뒤 자신만 병원 치료를 받았다.

심하게 다친 B씨는 한겨울 새벽 추위 속에서 아무 구호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수 시간 방치됐다. B씨의 부모는 아들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사고 발생 9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된 B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B씨의 사망 경위를 확인하던 중 B씨가 사고 당일 A씨를 만났다는 정황을 파악해 조사에 나섰지만 A씨는 거짓말을 했다. B씨가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고, 사고 직후 친구가 보이지 않아 혼자 빠져 나왔다고 한 것이다.

경찰은 A씨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수상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숨진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56%였다. 면허 정지 수준으로 만취 상태라고 보기 힘들었다. 폐쇄회로(CC)TV 영상은 더 의심스러웠다. 운전자만 헬멧을 썼는데 뒷좌석에 헬멧도 없이 탔다고 주장한 A씨의 상처가 B씨보다 적었던 것이다.

경찰은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CCTV 정밀 판독을 의뢰했다. 판독 결과 운전자는 B씨가 아니라 A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A씨를 계속 추궁했다. 결국 사고 발생 2주가 넘도록 거짓말을 하던 A씨는 자신이 운전을 했다고 자백했다.

A씨는 경찰에서 “너무 어두워 친구가 쓰러져 있는지 몰랐고, 음주운전으로 처벌 받는 게 두려워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B씨가 당시 제 때 조치만 받았어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종경찰서 관계자는 “B씨는 몸을 웅크린 채 발견됐다. 사고 직후 살아 있어서 추위를 느끼다 보니 몸을 웅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술을 마신 양에 비해 혈중알코올농도가 낮다. 이는 사고 이후에도 혈액 순환 등 신체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음주 운전을 숨기기 위해 심하게 다친 친구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A씨는 결국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구속됐다.

최두선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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