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지우마 호세프 정권의 수석장관에 임명됐다. 룰라 전 대통령의 돈 세탁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가속화하면서 정권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자, 일반 법원의 재판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으로 풀이된다. 브라질의 경우 내각 각료로 기용되면 대법원에서만 재판을 받게 된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호세프 대통령을 만나 수석장관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룰라는 2010년 말 대통령 퇴임 이후 5년여 만에 정치무대에 공식으로 복귀했다. 수석장관은 브라질 정부조직법상 행정부처를 총괄한다.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를 수석장관에 임명한 것은 탄핵 위기에 몰린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사법당국의 부패 수사를 비켜가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룰라는 호세프 대통령의 전임자이자 정치적 스승으로 부패 의혹 수사가 진전될 경우 호세프 대통령의 거취 또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반정부 시위대는 이달 13일 호세프 대통령 탄핵과 부패 의혹에 휩싸인 룰라의 처벌을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상파울루 사법당국은 14일 룰라의 돈 세탁 의혹 사건을 연방법원에 인계했으며, 야권은 이번 주 안에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심의할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방침이다. 룰라와 호세프 대통령의 목줄이 바짝 죄어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당의 아폰소 플로렌시 연방하원 원내대표는 “룰라의 수석장관 임명은 브라질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초래되는 정국 불안을 단지 룰라의 수석장관 임명만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경제위기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호세프 정부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호세프 대통령은 추가적인 정국 안정 수단으로 재계의 불만을 사온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 각료를 교체하고 경제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언론은 전했다.
수석장관으로 임명된 룰라의 역할도 주목된다. 룰라는 호세프 대통령의 각료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연립정권 참여 정당 간 정책협의와 경제정책 운용에 관해 폭넓은 자율권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세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룰라 집권 시절(2002~2010년) 때처럼 성장률 제고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한 정당 고위 관계자는 “이제부터 룰라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자칫하면 호세프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17일 브라질의 한 연방 판사가 룰라 전 대통령의 수석장관 임명이 법질서를 유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효력 발생 정지를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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