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억 원을 쏟아 붓는 중국 클럽을 향한 시선은 절반이 부러움, 나머지 절반은 냉소다. 당장 전력이 강해지고 프로축구 슈퍼리그의 인기가 치솟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이런 대규모 투자가 무한정 이뤄질 수 없을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중국 축구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본보는 산둥 루넝 축구단을 20년 가까이 취재한 산둥 라디오 채널의 하오 총 기자와 산둥 구단의 홍보책임자 린 시앙유씨 인터뷰를 통해 아낌없이 선수를 사들이는 중국 축구의 미래를 들어봤다. 산둥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인 왈테르 몬틸로(32), 디에고 타르델리(31) 그리고 현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수인 지우(29)를 보유한 슈퍼리그의 빅 클럽 중 하나다. 브라질 국가대표 사령탑을 지낸 마누 메네제스(54)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국가 눈치보기는 옛말
중국 기업들이 축구단에 거액을 쓰는 배경에는 시진핑(63) 국가 주석의 ‘축구굴기(축구로 일으켜 세우다)’ 정책이 있다. 시 주석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하듯 지갑을 연다. 그래서 정책이 바뀌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고 슈퍼리그도 와르르 무너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하오 총 기자는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것을 보고 중국 사람들은 ‘우리도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당국의 눈치를 보며 돈을 쓰지 않는다. 축구단이 발전하면 뒤따르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중국 팀들이 아시아 전역에 생중계되는 챔피언스리그에 집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산둥 구단의 홍보 책임자 린 시앙유씨도 “K리그 전북 현대가 활발히 투자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중국 국가전력공사(한국의 한국전력과 비슷)도 1998년 정부 지시로 축구단을 인수했지만 지금은 그와 별개로 구단 발전을 위해 꾸준히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뿌리도 튼튼히
중국 클럽들이 백지수표를 들고 명품관을 쇼핑하듯 이름값 높은 스타를 사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됐다는 비판도 많다. 뿌리를 탄탄히 하려면 유소년 축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중국 클럽들도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했다.
산둥 구단은 1999년, 웨이팡(?坊)시에 유소년 축구 센터를 건립했다. 면적이 37만㎡로 한국 국가대표 축구의 요람인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11만2,000㎡)의 3배가 넘는다. 산둥 클럽하우스의 박물관에는 웨이팡 유소년 센터를 800분의 1로 축소해놓은 모형이 있는데 서른 개 가까운 잔디구장과 수 십채의 숙소로 이뤄져 있다. 산둥은 브라질과 포르투갈에도 유소년 축구 센터를 세웠다. 15세 이하 선수 중 우수 자원을 선발해 이곳으로 보낸다. 린 시앙유씨는 “중국 내에서 유소년 시스템은 산둥이 최고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오 총 기자도 “중국 팀이 선수 영입에만 신경 쓴다는 건 선입견이다. 유소년 지도자의 숫자가 부족해 돈을 더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게 문제다. 우수한 유소년 지도자를 빨리 길러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클럽 축구에 비해 부진한 중국 축구대표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오 총 기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이 세계축구 랭킹 1위는 아니다. 우리도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같은 발전 속도면 10년 뒤 중국대표팀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국내전문가들도 중국 축구 수준이 성장세라는 것에 동의한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중국에서 뛰는 슈퍼스타보다 그들을 보며 조금씩 발전하는 중국 선수들이 모습이 더 무섭다”고 경계했다.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도 “유명 감독이 오면 클럽의 축구 문화가 달라진다. 중국 선수들이 그런 감독들에게 배우면서 몇 년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노련해졌다”고 말했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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