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계간지 ‘실천문학’을 발간하는 실천문학사가 경영악화로 인한 갈등으로 편집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17일 실천문학사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김남일 대표를 비롯한 문인 주주들이 물러나고 신임 대표와 이사가 선임됐다. 이날 총회에서 6,500주를 보유한 2대 주주 한의사 윤한용씨가 7,600주를 보유한 1대 주주 시인 이영진씨의 위임을 받아 주요 결정을 강행했다. 대표로는 이씨가, 신임 이사로는 윤씨와 시인 공광규씨가 지명됐다. 편집위원들은 이에 반발해 총회 도중 퇴장했고 15일 대표이사와 주주들에게 사퇴 성명서를 전달했다.
김원, 김정한, 김종훈, 서영인, 장성규, 황인찬 등 6명의 편집위원들은‘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사퇴하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몇몇 대주주에 의해 계간 ‘실천문학’이 출판사 경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그들의 ‘배당금’을 침해하는 ‘계륵’으로 규정됐다”면서 “11일 주주총회는 1980년부터 시작된 계간 ‘실천문학’의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 등 신임 이사진은 이대로 실천문학의 경영악화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세계의문학’, ‘솟대문학’, ‘소설문학’, ‘유심’ 등 이런저런 문예지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휴간’이나 ‘부정기간행물로 전환’ 등의 형식을 통해 사실상 폐간 수순을 밟았다. 이 대표 등은 계간지 제작에 매년 1억원 정도 적자가 발생하는 데 기존 이사진이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철저한 내핍 경영을 바탕으로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퇴한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오랜 기간 ‘실천문학’이 적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계간지가 수익 때문에 운영하는 게 아니라는 건 모든 출판사가 아는 사실”이라면서 “특히 실천문학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항해 창간돼 진보적 담론을 대표해왔다는 점에서 자본의 논리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남일 대표가 물러나는 시점에 맞춰 전면적인 개편안 등 쇄신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소주 대주주들에 의해 독점된 회사 운영과 계간지 편집 구조에 대해 승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편집위원 전원 사퇴로 당장 실천문학 여름호 발간은 불투명해졌다. 이 대표 측은 계속 대책을 논의 중이다. 사퇴한 편집위원들도 18일 다시 모여 후속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실천문학은 군부독재에 항의하기 위해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1980년 창간한 진보적 문예계간지다. 소설가 이문구, 송기원 등이 발행인을 지냈고 시인 고은, 소설가 박태순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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