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오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갈색과 회색이 오묘하게 섞인 눈동자가 먼 곳을 응시했다. 이목구비에서 느껴진 섬뜩함은 영화 '널 기다리며'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기범을 떠올리게 했다. 김성오는 기범에 대해 "뇌구조부터 다른 인간이다. 칼을 잡는 방법도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했다"면서 깊은 연구 끝에 탄생한 캐릭터라고 밝혔다. 스크린 밖에서 만난 김성오에겐 어둡고 복수심 가득한 기범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곧 태어날 아기를 고대하는 예비 아빠이자, 유머러스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상업영화 첫 작품이 2002년 '긴급조치 19호'다.
"연극만 하다가 오디션을 봤다.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었고 큰 행복이었다."
-배우 인생에 있어 또 다른 행복은 뭐였나.
"2009년 SBS 11기 공채 탤런트가 됐다. PD들 만나 열심히 커피를 돌리며 눈도장을 찍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고 좋아서 한 일이었다. 그 무렵 영화 '아저씨' 오디션에 합격했다."
-'시크릿가든' 김비서로 빵 떴는데.
"공채 출신이라고 덕을 본 건 없다.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와의 인연으로 맡은 배역이다. 전작 '온에어'와 '시티홀'에 출연했다. '시크릿 가든'을 하자고 신 PD가 연락을 주셨다. 원래 액션스쿨의 일원으로 섭외됐다가 김 작가가 '그 배역 맡기기 미안하다'면서 김비서 역할을 제안했다."
-김 작가와의 인연이 있을 줄 몰랐다.
"'온에어' 찍을 때 몇 회 나오다가 말기에 용기내 전화를 걸었다. '더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행동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욕도 먹었다. 그 후 김 작가님이 좋게 봐주셨는지 '시크릿 가든'에서 큰 역할을 주셨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태양의 후예'에는 왜 안 불러주셨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천의 얼굴이다. 드라마에선 유쾌해 보였는데 이번 영화에선 무섭다.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학창시절 여드름 고민 정도? 캐릭터의 강약을 조절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일부러 계산한 적은 없다. 의뢰가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하려 한다(웃음)."
-연기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나쁜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들의 심리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안면도 없는 흉악한 범죄자를 뉴스에서 보고 사랑에 빠진 여자들이 해외 곳곳에 있더라. 깜짝 놀랐다. 내가 연기한 기범이도 어느 누군가에겐 매력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가족들이 이 영화 보고 놀라겠다.
"사실 배우의 꿈을 꾸고 있을 때부터 나에 대해 부모님께 말한 적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시사회에 부모님을 초대한 적 없다. 쑥스럽고 민망하다. 내가 박찬호나 박지성도 아니고 아직은 창피하다."
-살인마를 연기하는 일이 심적으로 어렵지 않나.
"현실과 구분을 해야 한다. 배역에 순간적으로 집중할 뿐이다. 살인마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뭔지도 모르겠다. 연기에는 기준이 없다."
-연기의 기준은 없어도 배우의 조건은 있을 텐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람을 연기하는 직업이니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술 먹고 했던 쓸데없는 행동들도 배우로서는 연기에 불을 지피는 석탄과 같은 순간이 될 수 있다. 내면의 모습들이 실질적으로 연기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16kg 감량으로 화제를 모았다. 참 독하다.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살진 않는다. 다이어트는 혼자만의 싸움이다. 그것조차 이기지 못하면 앞으로 무슨일을 할 수 있겠는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어서 무슨 흔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마음이었다."
-굉장히 단단한 의지가 보인다. 곧 태어날 아들에게 귀감이 되겠다.
"얼마 전 책을 읽었는데 미국에 굉장한 부자 회장이 허름한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 직원이 회장한테 '아드님은 얼마 전 최고급 스위트룸에서 묵었는데 회장님이 이런 곳에서 주무셔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회장이 '그 아이한테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돌봐줄 아버지가 있지만 나에겐 그런 아버지가 없다'고 답하더라. 그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나도 아이를 험한 세상에서 보호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래서 단단해져야 한다."
-아이의 외모나 성격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색시랑 나랑 외모가 닮아서 비슷한 아이가 나올 것 같다. 아들이니까 성격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나는 최고의 사위다. 어른들이랑 잘 어울리고 잘 웃기고, 분위기를 잘 맞춘다. 운동도 좋아한다."
-아이 태어나면 할 일이 많은데 팔 다쳐서 어떡하나.
"결혼 참 잘했구나 싶다. 지금 샤워도 혼자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는다. 만삭인 아내가 도움을 많이 준다."
사진=임민환 기자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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