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의 잡화점에서 변신 자동차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아이가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TV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난감이었다. 가격은 3만4,000원. 터무니 없이 비쌌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가격의 정확히 두 배였다. 점원은 요즘 인기가 좋아서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비싼 가격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할아버지가 능력이 있어야 사줄 수 있는 거야”.
점원은 아이의 할아버지의 자존심과 아이에 대한 사랑을 ‘바가지’ 가격으로 시험하려 했던 걸까? 아무리 인기 있는 장난감이라고 하더라도, 우동 한 그릇도 비싼 고속도로 휴게소라 해도 두 배는 지나쳤다. 곧 아이보다 3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 아이가 가게로 들어왔다. 그 아이 손에는 가게에서 팔고 있는 것과 똑같은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자기 것과 요리조리 비교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이거 중국산 짝퉁이죠?” 점원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아이도 밀리지 않았다. 자기 손에 든 장난감 자동차를 앞으로 내 보이며 “내 것과 다른데요. 나는 마트에서 샀는데.” 그러고 보니 거기서 팔고 있는 장난감 자동차는 뭔가 조잡해 보였다. 품절 현상이 극심한 제품이라 중국산 가짜 물건도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게에서 나와 차에 돌아온 후 아이는 한참을 울었다. 아이는 울면서 할아버지와 아빠가 장난감 하나 사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아이에게도 그 장난감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그렇게 사다 모은 게 열 개나 있다. 나와 내 파트너가 이 장난감을 열 개나 사다 줬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자괴감이 생기지만 다른 아이들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아이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10개 정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TV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변신자동차 장난감이 전부 상품으로 출시되어 있기 때문에 대략 종류만 30종 이상에, 같은 종이라도 여러 색깔로 출시되어 있어 전체 시리즈는 100종이 넘는다. 아이에게 100종 모두를 사주는 부모야 있을 리 없겠지만, 놀랍게도 100종을 모두 사준다고 해도 아이가 만족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왜냐하면 장난감 자동차 박스 안에는 카드 세 장이 랜덤으로 들어 있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 카드를 모으기 위해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의 제품을 또 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새로 산 제품 안에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카드가 들어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한 마디로 이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끝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처럼 아이들은 이 변신 자동차 30종을 모으면 다시 색깔 별로 모으고, 색깔 별로 모으면 다시 카드를 모으는 것이다.
요즘은 TV 방송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방송국이 아니라 처음부터 장난감 제조사에서 제작하고 캐릭터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아동용 프로그램이 교육적 가치가 있는지, 예술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단지 아이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 때문일까? 이 장난감 제조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고 하며 언론에서는 성공 마케팅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부모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원성이 자자하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부담된다’ ‘애니메이션의 질이 지나치게 낮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중에서 ‘너무 쉽게 부숴진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 비싼 만큼 제발 제대로라도 만들어 달라고. 내 아이가 가진 4대의 변신자동차도 더 이상 변신이 되지 않는다.
곧 ‘시즌2’가 방송된다고 한다. 보여주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사정을 모르는 소리다. 아예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빠짐 없이 배워온다. 시즌2가 시작되면 새로운 장난감 시리즈가 나올까 봐, 아이와 장난감 가게에서 씨름하게 될까 봐, 부숴져서 우는 아이 달래러 또 울며 겨자먹기로 사오게 될까 봐 두렵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에 내 아이는 소비의 노예가 된 ‘자본주의 키드’로 자라난다. 온 사회가 한 마음으로 키운 자본주의 키드로 말이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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