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반복되는 여당의 공천학살
보스ㆍ계파 정치 폐해의 한 단면
개혁보수 정당으로 승부 걸어보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조순형 전 민주당 의원의 뒤를 잇는 ‘미스터 쓴 소리’다. 중진회의에서의 그의 말은 여당에 주는 뜨끔한 각성제다. 고사를 인용하는 풍부한 지식과 그에 담긴 명쾌한 논리와 통찰에 그 자리의 누구 하나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막말 파동의 당사자들이 대거 물갈이 대상에 올랐지만 이 의원의 비판의 품격은 이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여당을 그나마 여당답게 만들고, 정치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지난 15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을 깼다. 당내의 작은 목소리에 불과한 ‘쓴 소리’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단순한 협량(狹量)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정체불명의 잣대에 따른 정치보복의 연장선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다.
“독재자의 딸”이라고 일갈했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오랜 대립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2인자로서 친박계 눈밖에 날만한 일을 했던 터라, 18대 때 친이계의 ‘친박 공천학살’처럼 19대 공천 때는 측근 인사들이 대거 낙천하는 고통도 맛봤다. 친박, 친이, 비박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보복 악순환의 한 고리였던 셈이다.
친박계가 주도하는 정치보복 성격의 공천 칼 바람은 이 의원에게만 향한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의 정책에 맞섰던 유승민 의원의 공천 보류 사태나 이른바 유승민계의 줄낙마, 기초연금 갈등이 원인이 된 진영 의원의 낙마 모두 ‘대통령의 눈밖에 난 인물’에 대한 손보기라는 범주에 묶을 만하다. 도대체 원칙이 뭔지도 모를 공천 발표가 이어지다가 수도권과 영남권 공천을 앞두고 갑자기 정체성과 품위, 혜택 받은 다선 등을 잣대로 들고 나온 친박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명분을 잃었다. 제3자 눈에 보이는 기준은 줄 잘 서고, 고분고분 말 잘 들으라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유 의원 행태에 대해서는 지지자들 사이에 생각이 많이 다르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이한구 위원장의 말로 보아 설사 유 의원이 공천을 받더라도 이미 배척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승민계로 분류돼 낙천한 조해진 의원은 16일 기자회견에서 “민주 정당이라면 위나 아래, 좌나 우로 다른 생각이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공천은) 돈 잘 쓰고, 권력에 잘 보이면 된다는 나쁜 처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런 울분을 의미 있게 녹여 낼 길은 없을까. 그저 과거처럼 낙천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혹은 18대 때 ‘친박연대’처럼 임시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선 뒤 상당수가 여의도로 복귀해 명예회복을 하고, 한 석이 아쉬운 여당의 손짓에 앞을 다투어 복당하기만 하면 권토중래(捲土重來)가 끝나는 것일까.
이번에는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 의원의 말마따나 배척된 주요 인사들을 보면 살아남은 의원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르기는 한 듯하다. 안보는 보수인 게 틀림없는 듯하나 경제 마인드는 개혁적 우파에 가깝다. 이재오 유승민 의원 등의 말을 뜯어보면 그렇다. 퇴행적 역사를 끊을 의지와 각오가 있다면 무소속이나 임시 그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서더라도 총선 이후 정체성을 가다듬어 개혁적 보수정당을 따로 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양당제의 폐해는 식상할 정도로 겪었다. 정치보복은 물론이고 보스, 계파정치, 심각한 이념적 편향성과 먼 간극으로 정치적, 정책적 갈등 조율이 어려운 것도 고쳐질 기미가 없다. 야권에서도 거대 야당의 친노 패권에 반발한 국민의당이 홀로서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독일과 북유럽은 정당간의 이념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분절적 다당제가 정착돼 있다. 연정이나 정책 연대가 빈번하다. 국민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할 뿐 아니라 평균 수렴에 입각해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도 다당제는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증오와 반목이 깊게 스며든 오늘의 공천 파동이 정치구조 전환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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