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일 낮에 경기장을 찾은 산둥 루넝(중국)의 2만 관중이 아드리아노(29)와 데얀(34)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에 넋을 잃었다. 몸값이 100억원이라는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수 지우(29)도 두 공격수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FC서울이 아드리아노와 데얀 투 톱의 활약에 힘입어 홈팀 산둥 루넝을 완파하고 K리그의 자존심을 지켰다.
서울은 16일 중국 지난(濟南)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3차전 원정에서 산둥 루넝을 4-1로 이겼다. 아드리아노가 2골, 데얀이 1골 1도움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이 중국 클럽을 누른 건 처음인데 더구나 적지에서 거둔 완승이라 더 의미가 깊다. 서울은 3연승으로 조 선두를 굳게 지켰다. 아드리아노는 3경기 연속 득점, 대회 9호 골로 물 오른 감각을 이어갔다. 아드리아노는 또 이날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돼 대회 3경기 연속 MVP의 진기록도 세웠다. 올 시즌 앞두고 100억원의 이적료에 산둥 유니폼을 입은 지우는 아드리아노와 데얀을 막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평일 낮에 2만 관중
이날 경기는 평일 낮에 열렸는데 2만 명에 가까운 관중이 들어차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산둥은 중국에서 손꼽히는 축구 도시다. 축구의 종주국이 잉글랜드라는 게 전세계 축구인들의 ‘정설’이지만 최근 중국에서 축구가 발원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프 블라터(80)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2004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축구박람회 개막식 석상에서 축구의 기원이 중국 산둥(山東)성의 쯔보(淄博)시에서 시작한 ‘축국’이라고 선포했다. 지난시 외곽에 있는 산둥 루넝 클럽하우스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가죽 공 전시물이 손님을 맞이한다. 축국의 국(鞠)이 가죽 공을 의미하는데 바로 그 가죽 공 모형이다. 이 공에는 산둥이 축구의 발원지임을 인정하는 블래터의 서명도 새겨져 있다. 축구에 대한 산둥 사람들의 강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국가전력공사(한국의 한국전력과 비슷)에서 운영하는 산둥 구단의 인기도 높다. 그래서 평균 관중이 2만 명이 넘는다. 산둥은 최근 아침과 저녁 날씨가 쌀쌀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보호하기 위해 이날 평일 낮 경기를 결정했다. 한국이라면 축구 팬을 외면한 처사라며 크게 논란이 됐겠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대학생 원해소(29)씨는 “직장인들은 오기 힘들지만 대학생들만 와도 2만 명은 충분하다”고 대수롭지 않아 했다. 실제 이날 경기장 1층은 오렌지(산둥 루넝의 상징색) 물결로 넘실댔다. 산둥 구단은 대학생들을 위해 경기 당일 인근 대학교와 경기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는데 이런 서비스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아드-데얀 활약에 2만 관중 침묵
아드리아노와 데얀이 산둥 팬들의 함성을 한 번에 잠재웠다. 아드리아노는 전반 28분 다카하기(30)의 로빙 패스를 오른발 슛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후반 17분 산둥 주실레이가 헤딩으로 동점을 만들자 경기장이 요동쳤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산둥 쪽으로 기울 때 서울이 고요한(28)의 재치 있는 슛으로 또 한 번 앞서갔다. 후반 20분 상대 진영 오른쪽에서 가운데로 패스를 내주는 척하다가 왼발 땅볼 슛을 때려 상대 골키퍼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데얀과 아드리아노가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후반 23분 데얀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강한 왼발 슛으로 골문 구석을 꿰뚫었다. 3분 뒤 데얀의 날카로운 땅볼 패스를 아드리아노가 가볍게 밀어 넣어 추가 득점하면서 경기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산둥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한 듯 발이 무뎌졌고 이를 보는 홈 팬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종료를 15분 이상 남겨 놓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팬들도 보였다.
산둥(중국)=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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