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한 형사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치수가 살아난 것보다 기쁘던데요. (웃음)”
지난 12일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의 여운을 시청자들만 느끼는 게 아니었나 보다. 이 드라마에서 김범주(장현성) 수사국장의 음모에 가담한 광역수사대 안치수 계장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 정해균(48)은 “안치수가 이재한을 죽일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내가 출연하지 못해도 좋으니 ‘시그널’ 시즌2는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극중 늘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안치수 계장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두 눈은 시종일관 반달 모양이었고 시즌2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할 땐 두 손으로 기도하는 포즈를 짓는 등 귀여운 모습까지 보였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의 얼굴 때문일까? 정해균은 이번 드라마에서 동료 형사를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피치 못할 사연을 가진 복잡한 내면을 연기했다. 평소 장난기 많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 하는 실제 성격과는 정반대다.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이 과거 진양경찰서 형사 시절의 안치수가 헤헤거리며 웃는 장면을 찍으면서 ‘아, 이렇게 착한 사람인데’ 라면서 안타까워할 정도였어요. (웃음)”
정해균은 그간 출연한 영화에서 살인범, 형사, 조직폭력배, 무속인 같은 범상치 않은 역할을 주로 맡았다. 특히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2012)에서 그를 기억하는 관객들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경찰을 조롱하는 엽기적인 표정의 연쇄살인범 제이의 광기를 잊지 못한다. 그는 “그 영화 찍고 ‘비주얼 쇼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관객들로선 어디서 저렇게 소름 끼치게 생긴 사람이 나왔나 싶었을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의 표현대로 ‘특수배역’ 전문 배우였던 탓에 따뜻한 옆집 아저씨의 이미지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상적인 삶을 사는 지극히 평범한 역에 대한 갈증도 크다. 역할에 대한 몰입을 강하게 하는 편이어서 이른바 ‘센 역할’을 하면 감정 소모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쳐다볼 때 더 이상 눈을 부라리지 않아도 되는, 바보스러운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실제로도 따뜻한 성격이고요. 하하.”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17년 차 배우지만 드라마 출연작은 MBC ‘화정’(2015)을 포함해 이번이 여섯 번째다. 장현성, 김원해 등 같은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의 동료들과 호흡을 맞춘 덕분에 적응이 수월했다. 특히 악역 파트너였던 장현성은 드라마 선배답게 잘 이끌어 줬다고 한다. “김범주가 박해영이 죽은 박선우의 동생인 걸 보고하지 않았다며 안치수의 뺨을 때리는 장면도 대본에 없는 현성씨의 아이디어였어요. 제대로 맞았지만 덕분에 ‘안치수 동정론’이 생겨 현성씨에게 고맙던데요.(웃음)”
‘시그널’의 설정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한 번 해 봤으니 배우는 안 할 것 같아요. 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하면 어떨지. 물론 농담입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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