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너무 달라 적응 어려워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 못따라가
패인은 실력보다는 심리적 부분
굉장히 아쉽지만 원없이 즐겨
다시 대국해도 이길지는 의문
“다시 알파고와 바둑을 두더라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은 든다. 그래도 아직은 인간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세기의 대국’ 마지막 대결에서 알파고에 승리를 내준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의 놀라운 집중력은 인정했지만 그것이 실력의 우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9단은 15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5번기 제5국에서 280수 만에 불계패했다. 총 다섯 번의 대국 가운데 가장 긴 5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승부는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알파고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 9단은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대국에 집중, 마지막 승리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주일 간의 대국을 통해 인간의 품격과 바둑의 아름다움을 전한 이 9단은 이날도 패배의 원인을 자신의 부족함에서 찾았다. 그는 “이번 대국은 정말 인간의 패배는 아닌 것 같다”며 “이세돌의 패배가 맞고, 나의 부족함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고 말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이 9단의 아쉬움은 컸다. 대국 종료 약 40분 뒤인 오후 6시 40분쯤 국내외 취재진과 바둑 관계자 400여 명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의 첫 마디는 “굉장히 아쉽다”는 것이었다. 대국 때와 달리 주황색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부인 김현진(33)씨, 딸 혜림(10) 양과 함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9단은 무대에 올라 떨리는 목소리로 “알파고와의 대국이 끝나서 아쉽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해내지 못해서 더 아쉽다”고 말했다.
이 9단은 심리적 부담을 떨쳐내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는 “사실 이번 대국은 아무래도 제게 좀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출발했다”며 “그럼에도 패한 것은 제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심리적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대국 상대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이다. 이 9단은 “생소한 대국 환경에서부터 수를 두는 스타일 등 (사람과) 너무나 달랐고, 그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게 사실”이라며 “(패인은) 실력적인 부분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다만 알파고의 집중력만큼은 강점으로 인정했다. 이 9단은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는 것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다”며 “실력적 우위는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집중력에서는 역시 사람이 이기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1승4패로 끝났지만 그는 알파고와의 대국을 즐겼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라는 의문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이번 대국만큼은 정말 원 없이,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알파고의 수법을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바둑 격언이나 바둑에 대한 이해, 인간의 창의력 등에 의문이 생겼다”며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9단은 “아쉬움이 많았지만 응원하고 격려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더 발전하는 이세돌을 보여드리겠다”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 말에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대국 현장에서 공개 해설을 한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위대한 도전을 끝냈다”고 총평했다. 그는 “(이 9단이 모두 진) 1~3국에서는 ‘승부사’인 이 9단의 고뇌를 엿봤고 4, 5국은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볼 수 있었다”며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알파고와 ‘알파고의 친구’인 이 9단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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