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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경 딸 키운 ‘40년 촛불기도’.. 80대 노모 깜빡 졸다 화재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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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경 딸 키운 ‘40년 촛불기도’.. 80대 노모 깜빡 졸다 화재 아찔

입력
2016.03.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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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빨리 대문 여세요! 어서요!”

10일 밤 10시쯤 이웃의 화재 신고로 출동한 소방관들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단독주택 대문 앞에서 80대 할머니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집안에 혼자 있던 A(84) 할머니가 소방관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혼자서 불을 끄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진입에 성공한 소방관들은 2평(6.61㎡) 남짓한 마당에 남은 불씨를 마저 끄고 방안도 살폈다. 소방관들이 할머니의 건강을 염려해 가족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필사적으로 말렸다.

사연은 이랬다. A 할머니는 매일 불공을 드렸다. 하나뿐인 딸이 잘 되게 해달라는 게 40년 계속된 기도의 전부였다. 추운 겨울에도 마당에 나가 탁자 위에 세로로 쓴 기도문과 딸의 사진, 촛불을 올려놓고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기도를 마치면 함께 사는 딸이 나와서 촛불을 꺼주곤 했다.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딸은 지난 1월 총경으로 승진했다. 지난주 충남 아산 경찰대에 총경 후보자 교육을 받으러 내려가던 딸은 A 할머니에게 “혼자 계실 땐 초를 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 날도 어김없이 마당 위 탁자에 촛불을 켜고 “딸이 관재구설(官災口舌ㆍ공직 관련 재앙)에 오르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다 며칠 전 어금니를 뽑아낸 자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고 깜빡 잠든 사이 촛불이 종이로 옮겨 붙어 벽면을 타고 치솟으면서 불이 난 것이다. 불은 삽시간에 나무탁자를 집어 삼켰고 옷 두 벌을 태웠다. 타는 냄새에 잠이 깬 A 할머니가 방에서 뛰쳐나왔을 땐 불길이 유리로 된 실내문을 막 넘어서려던 참이었다. A 할머니는 물이 가득 든 큰 양동이를 힘껏 들어 불길에 끼얹었다. 한 번 더 양동이에 물을 채워 들이붓자 불길은 잦아 들었고 그제서야 소방관들에게 대문을 열어줬다.

할머니의 모정은 극진했다. 4평 남짓한 방 안에도 여기 저기 기도문이 붙어있었다. A 할머니는 검게 그을린 벽과 마당을 쓸면서도 “기도하러 절에 가야 하는데 공양미가 젖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광진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땐 자체 진화됐고 나무탁자와 옷 두어 벌이 타고 외벽이 그을린 것 외에 큰 피해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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