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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피임약의 재료를 합성한 미라몬테스

입력
2016.03.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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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3월 16일

멕시코의 화학자 루이스 미라몬테스. 그는 경구용 피임약의 주성분인 활성 황체호르몬 노르에티스테론을 합성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 자료실
멕시코의 화학자 루이스 미라몬테스. 그는 경구용 피임약의 주성분인 활성 황체호르몬 노르에티스테론을 합성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 자료실

1951년 10월 15일 멕시코의 신텍스(Syntex)라는 제약회사에서 경구용 활성 황체호르몬 노르에티스테론(norethisterone)이 합성됐다. 그 호르몬을 주성분으로 최초의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가 미국서 시판된 건 9년 뒤였다.

저 연구의 리더가 지난해 별세한 ‘경구피임약의 아버지’ 칼 제라시(Carl Djerassi, 1923~2015)다. 그는 멕시코 출신 화학자 루이스 미라몬테스(Luis Miramontes, 1925~2004)와 신텍스의 책임자 조지 로젠크란츠(1916~)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노르에티스테론을 실제로 합성한 이는 미라몬테스였고, 셋은 공동으로 물질특허를 등록했다. 제라시는 부신피질호르몬 코르티손 합성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고 존경 받을 만한 여러 활동을 했지만, 경구피임약에 관한 한 그가 과한 영광을 누렸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3월 16일은 미라몬테스의 생일이다.

‘경구피임약의 아버지(Father of the Pill)’로 불리는 칼 젤라시. 그는 51년 연구 책임자였다. AP
‘경구피임약의 아버지(Father of the Pill)’로 불리는 칼 젤라시. 그는 51년 연구 책임자였다. AP

먹는 피임약은 인류사 특히 여성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 주된 피임법은 체외사정 콘돔 자연주기법 페서리 등이었다. 체외사정과 콘돔은 남성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피임법이고, 페서리는 시술이 번거롭고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허락한 자연주기법은 ‘바티칸 룰렛’이라 불릴 만큼 실패율이 높았다. 여성들은 심지어 레몬즙을 묻힌 스펀지를 질에 삽입하기도 했다.

먹는 피임약도 물론 부작용은 있다. 구토증상 소화불량 체중증가 월경불순 등. 페미니스트들이 초기 경구피임약을 경계한 것도 모성 건강 때문이었다. 피임이 여성 책임처럼 인식돼 양육 등에서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작용도 우려됐다고 한다. 물론, 피임 실패와 낙태 후유증이 모성 건강에 미친 영향이 더 컸다.

당시의 국가가 여성들 못지않게 경구피임약에 환호했다. 서기 원년 세계 인구가 2배로 느는 데 1500년이 걸렸다. 다시 2배가 되는 데는 300년이 걸렸고, 130년 뒤 또 2배가 됐다. 1930년 세계 인구는 20억 명이었지만, 2000년에는 65억 명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서구 사회는 경구피임약을 멜서스의 어두운 예언에서 벗어날 구명 줄이라 여겼다.(지구 차원에서 보자면 멜서스 전망은 아직 유효하다.)

한국은 60년대 산아제한ㆍ가족계획이라는 국가 사업 덕에 먹는 피임약의 수혜를 선진적으로 누린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와 달리, 국가가 임신권을 통제한 사례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경구피임약을 가장 뜨겁게 반긴 건 68혁명의 주체들이었다. 그들에게 경구피임약은 성 해방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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