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거취 정하라고 옥죄는 상황
오늘 최고위서 공천 여부 결정할 듯
평소 “측근 부당 낙천, 가만 있지 않을 것”
측근 사라져 나홀로 행보 가시밭길
여권의 눈길은 측근들이 사실상 ‘폐족’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선택에 모아진다. 유 의원은 평소 사석에서 “나를 도왔다는 이유로 가까운 의원들이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얘기해왔다. 설마 했던 우려는 15일 현실이 됐다.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황진하 사무총장은 이 같은 공천결과를 발표한 뒤 “유 의원 문제는 내일(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매주 수요일 열리는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를 16일만 ‘비공개 최고위’로 전환했다.
이날 공천 결과에 비박계의 한 인사는 “공관위를 위시한 친박계가 유 의원만 남겨두고 수족부터 자르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택했다”며 “사실상 유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정하라고 옥죄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친박계를 위시한 공관위의 칼 끝이 유 의원을 향하고 있음은 이날 공천 발표로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친박계가 유 의원을 이렇게까지 코너로 몰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앞서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사람’ 등 당규에도 없는 자격심사 기준을 거론하며 유 의원의 컷오프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그러나 이는 명목상 이유일 뿐 실은 개혁보수 주자로 유권자에게 깊숙이 각인된 유 의원이 ‘미래권력’으로 성장할 싹을 미리 자르려 청와대와 친박계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유 의원은 지난해 4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고 천명하면서 노선을 분명히 했다.
유 의원이 당장 부당한 공천에 항의하며 탈당 뒤 무소속 출마까지도 저울질할 상황이나 쉽지는 않은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이자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사실상 대통령과 일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대구에서 유 의원 본인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문제는 이날 공천에서 대거 탈락한 친유승민계 의원들의 생환 여부다. 당내에는 대구와 수도권의 친유승민계 의원들이 ‘새누리당’ 간판을 떼고 당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유 의원만 무소속으로 살아온다 해도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기엔 역부족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비판 여론을 명목으로 유 의원에게만 경선 참여 기회를 준다고 해도 가시밭길이긴 마찬가지다. 이미 친박계는 유 의원이 4년 전 당명 개정을 반대하며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맞선 일이나, 청와대의 외교 실책을 지적하며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거론한 일까지 들춰 “당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공개수모를 줬다. 일각에선 상처 입은 유 의원을 경선에 참여시킨 뒤 ‘진박’을 자처하는 상대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떨어뜨리는 게 친박계의 전략이라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유 의원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 의원은 지난해 말 사석에서 자신의 미래와 관련해 “공천에서 떨어져도 정치는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는 자신이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내에서도 당장의 공천 배제가 차기를 노리는 그의 정치 스케줄을 늦출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더 많다.
지난달 예비후보 등록 이후 선거운동 외에는 침묵을 지켰던 유 의원은 이날도 대구 동구 자택에서 입을 굳게 닫았다. 그에겐 이날 밤이 향후 정치 명운을 결정 지을 가장 긴 밤이 될 터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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