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에게 희망을 걸고 싶었어요. 돈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회사원 김선재(28)씨는 15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5국을 앞두고 직장 동료 8명에게 승자를 맞추는 5만원 내기를 제안했다. 앞선 대국들에서 1만원 내외로 정해졌던 판돈은 세기의 대결이 인기를 끌면서 훌쩍 커졌다. 김씨는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전에서도 이만한 돈을 걸고 마음을 졸여 본 적이 없다”며 “3연패를 딛고 첫 승을 일궈낸 이 9단의 집념을 응원하기 위해 큰 돈을 걸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인간 고수와 컴퓨터의 바둑 대국을 두고 내기 열풍이 불었다. 많은 이들이 인간 승리의 염원을 크고 작은 내기에 싣는가 하면, 역사적 대국을 축제로 만들겠다며 거액의 등록금을 내놓은 대학원까지 나왔다.
승부 내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바둑학원에서는 초등학생 8명이 대국을 지켜보며 1,000원짜리 판돈을 걸기도 했다. 전모(11)양은 “찌르기와 비틀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알파고의 기술에 매번 놀라지만, 이 9단이 이길 거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아 이 9단 승리에 걸었다”라고 말했다.
경기 승자를 맞히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학교도 등장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학과는 이달 2일부터 일주일간 대국 승패와 내용(불계승, 계가승, 불계패, 계가패)을 모두 맞히는 사람에게 빅데이터 MBA학과 석ㆍ박사 과정의 전액 장학금(8,000만원 상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벤트에 참여해 이 9단의 불계승(3승2패)을 예측했다는 윤모(35)씨는 “승자 맞히기 경우의 수가 1,024개나 되기 때문에 애초부터 어려운 확률 싸움이 될 것을 알았지만 당첨과 상관없이 이 9단에게 힘을 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이벤트에 응모한 사람들은 500명에 달했다.
내기 열기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뜨거웠다. 가상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을 이용해 베팅하는 미국의 한 사이트에는 지난달 12일부터 1국 당일인 9일까지 ‘알파고가 세계 최강자인 이세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베팅을 진행했다. 베팅이 계속된 25일 동안 모인 총액은 148.79BTC(비트코인 단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7,40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전문가들은 막연하게 상상해 왔던 기계나 AI의 위력을 실감하며 커진 불안감이 내기에 투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포심을 줄이기 위해 이 9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시에 인류 승리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방편 중 하나로 승부 내기를 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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